소설 '마산' 출간…1970∼2020년대 배경으로 마산의 부흥과 쇠락 담아
장편소설 '마산' 김기창 작가 |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한국 현대사의 정치적, 산업적인 흐름이 마산이라는 도시와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마산의 역사적 배경이 소설의 소재가 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죠."
소설가 김기창이 고향인 경남 마산(현 창원시 마산회원구·마산합포구)을 소재로 장편 '마산'(민음사)을 펴냈다. 그가 도시를 소재로 장편을 쓴 것은 오늘의 작가상을 안겨준 '모나코'(2014년)와 '방콕'(2019년)에 이어 세 번째다.
김 작가는 지난 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마산은 점차 축소되고 있는 한국의 많은 지방 도시가 가진 어려움이나 현실을 대변할 수 있는 도시라는 점에서 다룰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작품을 구상한 배경을 밝혔다.
김기창 작가의 장편소설 '마산' |
이번 소설은 마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서로 다른 세 시간대의 이야기다. 1975년의 젊은 공장 근로자 동미, 1999년의 대학생 준구, 2021년의 젊은이 태웅과 은재가 주인공이다. 각 주인공이 복잡한 인연으로 이어져 있고 모든 이야기가 찬수라는 인물에 의해 관찰되고 서술된다.
시대별 이야기는 마산은 물론 한국 사회가 처했던 경제적, 정치적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정부가 수출을 장려하고 산업화가 한창이던 1975년 동미는 공장에서 잠이 오지 않게 하는 약 '타이밍'을 먹고 일하도록 강요받고, 열악한 근무 환경에 시달린다. 노동조합을 만든 공장 동료들은 '빨갱이' 취급받는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수많은 기업이 문을 닫은 직후인 1999년 준구는 빚을 지고 중국으로 도망친 부모가 남긴 빚 때문에 주변의 질시에 시달리고, 애지중지하던 자동차마저 도둑맞는다. 준구는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준 채권자가 차를 훔쳤을 거라 짐작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은재는 아버지가 세운 호텔에 손님의 발길이 끊기고 빚이 점차 불어나 절망적인 상황이다. 은재의 친구 태웅은 팬데믹 탓에 식당 문을 닫은 어머니가 설상가상으로 신장질환을 앓게 되자 병원비에 허덕인다.
김 작가는 "마산은 1970년대 수출자유지역(이후의 마산자유무역지역)이 지정된 곳으로 한국의 경제 전략이었던 수출과 함께 급격히 성장했지만, 1990년대 중후반엔 외환위기로 무너지면서 도시 성장의 동력이 꺾여 2010년대에는 시군 통폐합으로 이름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마산은 20세기에 호출됐다가 21세기에 버림받은 도시였다.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별처럼 반짝였다가 IMF 외환 위기 전후로 찾아온 정보화 시대에 스리슬쩍 퇴출당한 후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결국 이름마저 잃은 도시였다."(본문 중)
인터뷰하는 '마산' 김기창 작가 |
한국 현대사와 맞물린 마산의 역사만큼이나 소설의 원동력이 된 것은 고향을 향한 작가의 애정이었다.
1978년 마산에서 태어난 김 작가는 대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서울에 거주했다. 이후 마산보다 서울에서 지낸 시간이 길어질 때쯤 우연한 계기로 다시 마산으로 가 2년 동안 지내다가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김 작가는 "개인의 삶이 그가 속한 국가나 사회는 물론이고 도시의 영향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제가 성장하는 과정에 마산이란 도시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제가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소설에는 마산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 마치 마산을 여행하는 인상을 준다. 통술집 거리, 3·15 의거탑, 돝섬, 임항선, 홍콩빠, 만날고개 등 마산에 실제 존재하는 장소들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각 장소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는 김 작가가 쓴 주석이 달렸다.
장편소설 '마산' 김기창 작가 |
특히 작중 서로 다른 시대의 인물들을 이어주는 '광남'이라는 상호는 김 작가와 각별한 인연이 있다. 작가가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마산에서 운영했던 가게가 '광남 상회'였던 것.
광남은 소설에서 인물이 타는 요트의 이름으로, 아버지가 운영하던 가게 또는 호텔 이름으로 등장한다. '남쪽에서 빛난다'는 뜻의 광남은 마산을 뜻하기도 하고 희망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런 이름의 힘 덕분인지 벼랑 끝에 내몰린 것처럼 위태롭던 동미, 준구, 은재, 태웅은 종국에는 새 희망을 발견한다.
눈에 띄는 것은 1975년 노동자 탄압을 피해 한국을 떠난 동미가 2022년 여생을 보내기 위해 타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마산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그의 곁에는 브라질 출생인 사위도 있다.
김 작가는 "사회 시스템의 변화뿐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는 개방된 제도나 문화가 늘어나면 지방이 성장과 발전을 지속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런 생각이 동미가 가족과 돌아오는 장면으로 표현됐다"고 설명했다.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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