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골라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일 수도 루안다의 국립노예박물관에서 연설하고 있다. 루안다/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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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지만 국회 거부로 해제되자,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 민주주의 발현과 민주적 회복성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도 긴박하게 상황을 주시하며 잇따라 메시지를 내놨다. 미국이 동맹국 ‘내정’ 문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밝힌 것은 이례적으로, 사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더 큰 악재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는 조처로 풀이된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4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외무장관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모든 정치적 의견 불일치가 평화롭게 법치에 따라 해소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전날에도 성명을 내어 비상계엄 해제를 환영하면서 “미국은 지난 24시간 동안 한국 상황을 면밀히 주시했다”고 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도 성명에서 “우리는 윤 대통령이 그의 우려스러운 계엄 선포로부터 경로를 바꾸고, 계엄을 끝내기 위한 한국 국회의 표결을 존중한 것에 안도한다”며 “상황을 계속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백악관과 국무장관이 한국의 비상계엄 해제에 “안도한다”는 성명을 낸 것은 미국이 이번 사태에 상당한 긴장을 했음을 보여준다. 또 “우려스러운 계엄 선포”라는 표현을 통해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비상계엄 선포 직후에는 “상황을 긴밀히 추적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와 연락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때까지는 해외의 ‘정치적 사태’에 대한 일반론적 언급이었다.
하지만 이후 조 바이든 행정부는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이 “중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상황 악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던지기 시작했다. 캠벨 부장관은 내년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엑스포와 관련한 행사 연설 첫머리에 한국 상황에 대해 언급하겠다면서 “우리는 한국의 최근 상황을 심각한 우려를 갖고 지켜보고 있다”며 “(한국의) 상대방들과 이곳과 서울에서 모든 급에서 관여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도 앙골라를 방문 중인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 상황에 대해 보고받았다며 “한국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백악관 쪽은 또 “미국은 이(비상계엄) 발표를 사전에 통지받지 못했다”며 윤석열 정부와 거리를 두는 모습도 보였다.
베단트 파텔 국무부 부대변인은 한국 국회가 표결로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한 뒤에는 “우리는 특정 국가의 법률과 규정들은 준수돼야 한다는 희망을 확실히 갖고 있다”며 “여기에는 (한국) 국회의 표결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을 향해 헌법 규정대로 비상계엄을 해제하라고 요구한 셈이다.
이처럼 미국 행정부가 긴박하게 대응한 것은 사태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면 미국도 곤란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수십년간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들 중 하나였으며, 이는 약 3만명의 미군이 주둔할 뿐 아니라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 국가들과 경쟁하는 이곳에서 한국이 민주주의의 등대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신문은 국제 정세를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로 표현하며 올해 3월 한국에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하게 한 바이든으로서는 이번 사태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미국 언론들은 윤 대통령이 미국이 정권 교체기인 데다 바이든이 해외에 나간 시점을 노린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이 계속되고,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이 진행 중인 엄중한 상황 속에서 미국이 윤 대통령의 행동을 묵과하기는 더욱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쪽도 한국 상황에 대한 놀라움을 드러냈다. 트럼프의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 수장 지명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고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알린 뒤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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