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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제주 4·3 유족 “윤, 계엄선포 제정신인가…과거 못 배우면 역사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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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제주4·3평화기념관에 전시된 4·3 당시 제주도에 내려진 계엄령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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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지 못했어요.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이유를 보면서 정말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4일 오후 4·3유족 양아무개(78)씨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양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당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육지 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됐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소식을 어젯밤에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며 “4·3사건 당시에도 계엄 때문에 수많은 인명피해가 난 것 아니냐. 그런 비상계엄 선포를 이 시대에 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4·3을 겪은 제주사람들은 인명피해가 많은 이유를 “계엄령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불법적 군사재판을 받고 육지형무소에서 7년 6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한 오아무개(95)씨는 “계엄이 선포됐다는 방송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옛날 일이 떠올랐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빨리 끝났으니 다행이다”라고 했다.



전국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4·3 당시 제주도에 내려졌던 불법 계엄령이 주목받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4·3 당시였던 1948년 11월17일 제주도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대통령령 제31호로 공포된 ‘제주도지구 계엄선포에 관한 건’이라는 이 문서는 “제주도의 반란을 급속히 진압하기 위하여 동지구를 합위지경으로 정하고 본령 공포일로부터 계엄을 시행할 것을 선포한다. 계엄사령관은 제주도 주둔 육군 제9연대장으로 한다”고 돼 있다. 문서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국무위원 12명의 이름이 자필 서명으로 들어있다.



제주도에 내려진 계엄령은 같은 해 12월31일까지 44일 동안 이어졌다. 계엄령 선포 이후 군·경 토벌대의 대대적인 강경진압이 전개됐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2002년 펴낸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는 “제주4·3사건의 전개과정에서 계엄령은 주민 희생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전의 희생이 비교적 젊은 남자로 한정된 반면, 계엄령이 선포된 1948년 11월 중순경부터 벌어진 강경진압작전 때에는 서너살 난 어린이부터 8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가 총살당했기 때문이다. 계엄령은 제주도민들에게 재판 절차도 없이 수많은 인명이 즉결 처형된 근거로 인식돼 왔다”고 밝히고 있다.



계엄령의 선포는 학살을 정당화했다. 제주4·3 당시 제주도민들의 인명피해는 1948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 사이에 집중됐는데, 정부와 군은 계엄 이후 언론을 통제했다. 이 때문에 제주도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일은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채 군대의 ‘전과’만이 보도됐다.



미군 고문관이 작성한 9연대 작전일지를 보면, 이 시기 하루 수십명에서 100명이 넘는 제주도민들이 날마다 죽어갔다. 주한미군사령부 일일 정보보고서는 “9연대가 모든 저항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중산간 지대에 있는 마을의 모든 주민이 게릴라 부대에 도움과 편의를 주고 있다는 가정 아래 민간인 대량학살 계획을 채택했다”고 기록했다.



4·3 당시 검거되거나 당국의 귀순 권고에 귀순한 도민들 가운데 상당수는 불법적 군사재판을 받고 육지 형무소로 이송됐다. 그 숫자만 최소한 2530명에 이른다.



한 4·3연구자는 “4·3 때도 불법적 계엄령 때문에 얼마나 많은 제주도민이 죽어가야 했느냐”며 “이번 대통령의 반헌법적 계엄령 선포를 보고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알게 됐다.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역사는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제주지방법원에서는 4·3 당시 불법적 군사재판을 받고 육지 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학살되거나 행방불명된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재심 청구가 이뤄지고 있다. 지금까지 모두 1600여명에 가까운 희생자들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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