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계엄’ 후폭풍] 계엄 저지한 시민들
軍버스 막고 계엄군 붙잡고 늘어져… 외신 “인간 바리케이드 만들었다”
계엄 소식, SNS 통해 급속히 전파… “軍이 먼저 장악했다면 상황 몰라”
● 계엄군 온몸으로 막은 시민들
계엄군 차량 막아선 시민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뒤 4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로 진입하려는 군 버스를 시민들이 막아서고 있다. 이들은 도로 위 버스를 포위한 채 “(군인들은) 돌아가라”고 외쳤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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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10시 29분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소식이 긴급 뉴스로 전해진 얼마 뒤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출구에 시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으로 도착한 이들도 있었고, 일부는 교통 체증을 우려해 자전거를 타고 국회 앞으로 달려왔다.
오후 11시 반을 넘어서자 국회 정문 앞의 시민들은 수백 명 규모로 불어났다. 이들은 정문을 막아선 경찰과 대치하며 “국회를 개방하라”고 외쳤다. 현장에 군 버스가 도착해서 국회로 진입하려 하자 시민 4명은 버스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버티며 진입을 막았다. 이들은 전조등 불빛을 노려보며 “(군인들은) 돌아가라”고 외쳤다. 일부는 무장 계엄군을 손으로 붙잡고 국회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밤 12시쯤에는 인파 규모가 4000여 명(경찰 비공식 추산)으로 불어나며 “비상계엄 철폐하라”는 구호가 울려퍼졌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이를 “시위대가 군인들에게 맞서 ‘인간 바리케이드(human barricades)’를 형성했다”고 전했다.
이후 오전 1시 2분경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자 시민들은 환호하며 “윤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계엄군이 철수하기 시작하자 시민들은 “고생했다. 잘 가라. 고맙다” “(군부대가) 철수하도록 도와달라”고 외치며 침착하게 길을 터줬다. 일부 시민은 철수하는 계엄군을 향해 박수를 보내며 배웅했고, 이에 계엄군은 군말 없이 국회를 빠져나갔다. 일부 군 차량은 인파 때문에 철수에 어려움을 겪자 운전석 유리창에 ‘복귀 중입니다. 비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메모를 써 붙이기도 했다.
● 현장 생중계 유튜브 등 SNS도 큰 역할
계엄 해제 결의안 통과에 환호 4일 새벽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자 국회 앞에 모여 있던 시민들이 손을 번쩍 들어 환호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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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시민들이 맨몸으로 계엄군에게 맞서는 과정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날 국회 안팎에서는 시민과 보좌진들이 스마트폰으로 군 헬기, 무장 계엄군, 군 차량 등을 촬영해 실시간으로 유튜브에 방송하거나 지인들에게 전송하는 광경이 포착됐다. 계엄군이 국회 본청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는 모습도 유튜브 영상을 통해 빠르게 퍼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담을 넘어 국회 경내로 들어가는 장면을 담은 영상은 한때 실시간 시청자가 238만 명을 넘었다.
시민들이 계엄군이나 경찰보다 먼저 국회 앞에 집결할 수 있었던 것이 SNS 덕분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계엄 소식이 SNS를 타고 매우 빠르게 전파됐기 때문에 시민들이 때맞춰 달려왔다는 것이다. 한 시민은 “만약 소식이 늦게 전파돼서 시민들보다 군경이 먼저 국회를 봉쇄했다면 무슨 상황이 벌어졌을지 모른다”며 “국회의원들이 제때 본회의를 열지 못하고 투표도 못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유튜브 생방송으로 국회 안팎의 충돌 상황을 전국 시민들, 해외 누리꾼, 외신이 지켜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계엄군이 실탄 발포 등 무력 대응을 할 수 없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해외에서는 독재 정권이 계엄령을 선포할 때 시민들의 대응을 막기 위해 SNS를 사전에 차단하는 경우도 있었다. 3년 전 미얀마 군부 쿠데타 당시 군정은 계엄령을 선포하며 인터넷을 차단했고, 2016년 튀르키예 군부 쿠데타 당시에도 같은 조치가 시행됐다.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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