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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 (토)

[설왕설래] 미국의 원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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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원죄’(original sin)는 본디 종교 용어다. 기독교 교리에서 인류의 시조에 해당하는 아담이 하느님의 뜻을 어긴 죄를 뜻한다. 원래 극락에서 행복만을 누릴 운명이었던 인간이 그곳에서 쫓겨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 것은 바로 원죄 때문이라고 기독교는 설명한다. 이처럼 종교적 색채가 강한 원죄가 요즘은 다른 의미로 쓰이는 듯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 비판적인 일부 친명(친이재명)계 인사가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킨 원죄가 있는 문 전 대통령”이라고 비난한 것이 대표적이다.

미지의 신대륙 미국에 영국인이 정착해 식민지 건설에 착수한 것은 17세기 초의 일이다. 그 뒤 미국에선 흑인 노예제가 널리 운용됐다. 당시는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노예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서해안에 상륙한 서양인들이 무력으로 흑인들을 붙잡은 뒤 유럽이나 미국에 팔아 돈을 버는 ‘노예무역’이 성행한 시절이었다. 1776년 미국 독립 이후에도 남부는 면화 재배를 위해 대규모의 흑인 노동력이 필요했던 터라 노예제를 적극 옹호했다. 반면 제조업 위주의 경제 구조를 갖고 있던 북부는 흑인 노예를 해방해 공장 근로자로 충원하고 싶어했다. 이런 견해차가 결국 무력 충돌로까지 이어진 것이 바로 남북전쟁(1861∼1865)이다.

전쟁이 북부의 승리로 끝난 이듬해인 1866년 미국에서 노예제는 완전히 폐지됐다. 하지만 그 상처는 160년가량 지난 오늘날에도 치유되지 않았다. 반미 성향 국가들이 미국을 성토하며 내거는 핵심 사유가 바로 노예제다. 2022년 7월 중국 외교부는 “(250년 가까운) 미국 역사에서 노예제가 합법이었던 기간이 3분의 1에 달한다”며 미국을 맹비난했다. 몇 년 전부터 아프리카 대륙 공략에 부쩍 공을 들이는 중국이 반미 감정을 자극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내년 1월 물러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엊그제 아프리카 앙골라를 방문했다. 앙골라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360만여명이 노예로 끌려간 과거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바이든은 “노예제는 미국의 원죄”라며 “좋은 역사든, 나쁘고 추한 역사든 과거사를 마주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 견제를 위한 ‘립서비스’가 아니고 진심이 담긴 반성이길 바란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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