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니파 무장조직 HTS, 승리 선언
13년 내전 종식… 정권 붕괴 눈앞
아사드 지원 러-이란 영향력 약화… 트럼프 “우리 싸움 아냐” 선긋기
“반군 통치능력 부족” 혼란 우려
8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주민들이 반군 전차 위에 올라 환호하고 있다. 반군은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고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끌어내렸다”고 밝혔다. 다마스쿠스=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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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부터 13년 넘게 내전을 벌여 온 시리아 반군이 8일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고 “내전 승리”를 선언했다. 반군에 국제법이 금지한 화학무기 등을 쓰며 ‘중동의 도살자’로 불렸던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비행기를 타고 다마스쿠스를 떠났지만 정확한 행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일각에선 비행기가 추락해 사망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아사드 대통령과 부친 하페즈 전 대통령은 1971년부터 53년간 대를 이은 철권통치를 이어왔다. 이런 아사드 정권의 붕괴로 중동을 포함한 국제정세 또한 격랑에 휩싸이게 됐다. 특히 아사드 정권과 정부군을 지원해 왔던 러시아, 이란 등은 반군 승리로 중동 내 영향력 약화가 불가피해졌다.
다만 수도 점령을 주도한 수니파 무장조직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 샴(HTS)’이 다종교 다민족 국가인 시리아를 통치할 만한 능력이 부족해 정정 혼란이 계속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HTS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알카에다와 한때 연관을 맺었으며 미국 등 여러 나라로부터 테러단체로도 지정됐다. 내년 1월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또한 “이건 우리의 싸움이 아니다. 미국은 시리아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며 개입 불가를 선언했다.
● 반군, 제2도시 점령 8일 만에 수도 장악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HTS는 8일 “다마스쿠스가 ‘폭군’ 아사드로부터 자유로워졌다”며 다마스쿠스 점령 소식을 알렸다. 지난달 27일부터 대대적인 공세에 나선 반군은 같은 달 30일 제2도시 알레포, 7일 제3도시 홈스를 점령했다. 이후 하루 만에 수도까지 확보한 것이다. 시리아 정부군 사령부는 군인들에게 아사드 대통령의 통치가 끝났다고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민들도 수도 외곽의 하페즈 전 대통령 동상을 부수며 반군을 환영했다.
아사드 대통령은 수도 함락 직전인 8일 새벽 비행기를 타고 도피했으나 행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의 부인과 자녀들이 6일 이미 러시아로 떠났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항공기 항로 추적사이트 플라이트트레이더24를 인용해 아사드 대통령이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행기가 시리아 해안 지역을 향해 비행하다 갑자기 유턴한 뒤 사라졌다고 전했다. 시리아 소식통들은 “아사드가 추락 사고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무함마드 가지 알 잘랄리 총리는 영상 성명을 통해 “우리는 국민이 선택한 어떤 지도부와도 협력할 준비가 됐다. 원활한 권력 이양과 국가 시설 보존을 위해 가능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겠다”며 자유 선거를 실시하자고 밝혔다.
● HTS 정권 잡아도 혼란 지속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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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민주화운동 ‘아랍의 봄’ 여파로 발발한 시리아 내전은 오랜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다.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인 아사드 정권은 시아파 맹주인 이란,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 시리아를 중동 진출의 거점으로 삼아 온 러시아 등의 지원을 받았다. 반군 또한 수니파, 소수민족 쿠르드족, 여러 군벌 등으로 나뉘어 좀처럼 힘을 합치지 못해 어느 한쪽도 승기를 잡지 못했다.
교착 상태가 깨진 것은 2개의 전쟁 즉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벌인 가자 전쟁 때문이다. 이 2개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 하마스를 지지해 온 이란은 과거처럼 아사드 정권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반군의 공세에 대응하지 못한 아사드 정권이 무너진 셈이다.
HTS 지도자 아부 무함마드 알 줄라니(사진)는 6일 CNN 인터뷰에서 “아사드 정권의 독재를 끝내고 제도에 기반한 국가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HTS는 알카에다의 연계 조직으로 창설된 ‘알누스라 전선(자바트알누스라)’을 전신으로 하는 단체다. 설립 초기에는 과격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의 성향을 보였으나 2016년 줄라니가 알카에다와의 연계를 공식적으로 끊으면서 이름을 지금의 HTS로 바꾸고 변신을 꾀했다. 여성의 히잡 착용과 금연을 강요하지 않는 등 비교적 온건한 정책을 펴고 있다.
줄라니는 이번 인터뷰에서도 알카에다와의 연관성을 재차 부인했다. 미국, 튀르키예(터키), 유엔 등에 속히 테러단체 지정을 해제해 달라고 촉구했다.
집권 1기 당시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결정을 내렸던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2기에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트루스소셜에 “시리아는 엉망이지만 미국의 친구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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