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군 지도자 “새로운 시리아 건설”… 이슬람 성지서 승리 선언 공개 연설
이스라엘, 50년만에 분쟁지역 진격… 美, 시리아 IS 거점지 75곳 공습
아사드가 남긴 화학무기 제거 추진
반군 지도자 승리 연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점령을 주도한 수니파 반군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 샴(HTS)’의 수장 아부 무함마드 알 줄라니가 8일 다마스쿠스 우마이야 모스크에서 공개 연설을 가졌다.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붕괴가 “이슬람 전체의 승리”라고 강조했다. 다마스쿠스=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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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승리했다. 이슬람 국가의 등불이 될 새로운 시리아를 건설하겠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접수한 수니파 반군 무장조직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 샴(HTS)’의 지도자 아부 무함마드 알 줄라니(42)가 8일 승리 연설을 갖고 “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이슬람 전체의 역사적인 일”이라고 자평했다.
HTS의 다마스쿠스 점령 직전 해외로 도피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사실상 러시아로 망명했다. 러시아 리아노보스티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대통령실(크렘린궁)은 9일 아사드 일가가 러시아로 망명했다는 언론 보도에 관한 질문을 받고 “정치적 망명 허가에 관한 결정은 국가원수의 참여 없이 내려질 수 없다”고 답했다. 망명을 허가한 사람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었음을 시인한 셈이다.
HTS 주도의 권력 이양이 사실상 시작된 가운데 주변국과 국제 사회는 이번 사태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전개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같은 날 시리아와의 영유권 분쟁지인 골란고원 내 헤르몬산에 있는 일부 시리아군 기지를 재빨리 점령했다.
미국 또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권력 공백을 틈타 재건할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해 시리아 내 IS 거점지 75곳을 공습했다. 아사드 정권이 보유했던 화학무기가 테러단체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중동의 여러 국가와도 협력할 뜻도 비쳤다.
● 줄라니 “시리아 정화, 이슬람 승리”
그간 노출을 꺼려 왔던 줄라니는 이날 이례적으로 공개 연설을 갖고 내전 승리를 선언했다. 군중의 환호 속에 다마스쿠스 우마이야 모스크에 등장한 그는 아사드 정권과 배후 이란을 동시에 비판하며 “아사드가 시리아를 ‘이란의 탐욕을 위한 농장’으로 전락시켰다. 시리아를 정화(purify)하겠다”고 외쳤다. 이번 승리는 아사드 정권하에서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사람과 전사(戰士)들의 희생으로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8세기 초 건립된 이 모스크는 이슬람의 주요 성지로 꼽힌다. 줄라니가 아사드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대통령궁이 아닌 이곳을 첫 연설 장소로 택한 것 또한 자신이 차기 지도자가 되는 것이 신(神)의 뜻이라는 주장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가디언 역시 그가 시리아의 새 통치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이라고 진단했다.
줄라니는 다마스쿠스 점령 후 자신을 본명 아흐메드 후세인 알 샤라로 소개하고 있다. 자신이 2003년 9·11테러의 주역 알카에다에 합류했지만 2016년 연을 끊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HTS의 진격 직전 비행기를 타고 다마스쿠스를 떠난 아사드 대통령과 가족들은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다고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 등이 보도했다. 다만 크렘린궁은 아사드 일가가 어디에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이 당분간 아사드 대통령과 만날 계획도 없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시리아 서부 타르투스항에 해군 기지를 두고 있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후에도 아사드 정권의 주요 지원자를 자처해 왔다.
● 이스라엘, 골란고원 추가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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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전체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 이스라엘은 8일 1974년 이후 50년 만에 골란고원 내 헤르몬산의 일부 시리아 군 기지를 점령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때 시리아 영토였던 골란고원을 점령해 이곳의 약 80%를 실효 지배해 왔다. 그간 고원의 서부는 이스라엘, 중부는 유엔 평화유지군, 북동부는 시리아가 지배했으나 이날 진격으로 북동부 일부 시리아 군 기지까지 접수한 것이다.
정상 높이가 2814m인 헤르몬산은 다마스쿠스와 불과 40km 떨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비교적 낮은 지대에 있는 다마스쿠스를 육안으로도 감시할 수 있다. 또 골란고원에서 발원한 요르단강과 갈릴리 호수는 이스라엘의 주요 식수(食水)원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같은 날 골란고원 내 다른 지역을 찾아 “이란이 만든 ‘악의 축’의 핵심 고리였던 아사드 정권이 몰락했다. 이스라엘이 이란,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에 타격을 가한 결과”라고 자찬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하마스가 억류한 인질들의 가족 단체와도 만났다. 그는 “아사드 정권의 몰락이 (하마스의 위기감을 고조시켜) 인질 귀환 합의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낙관했다.
● 우크라 “푸틴 편에 서면 몰락” 반색
찢겨 버려진 아사드 사진 8일 동유럽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의 시리아대사관 앞에서 한 남성이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사진을 찢은 후 발로 밟고 있다. 반대파를 잔혹하게 탄압해 ‘중동의 도살자’로 불렸던 그는 사실상 러시아로 망명했다. 러시아 대통령실 또한 9일 아사드 일가가 러시아에 있다고 밝혔다. 베오그라드=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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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드 정권이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시리아와 외교 관계를 중단했던 우크라이나 또한 반군의 승리를 반겼다. 안드리 시비하 외교장관은 8일 아사드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가까웠다는 점을 거론하며 “푸틴에게 베팅하는 독재자는 늘 몰락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꼬집었다. 새로 들어설 시리아 정부와 속히 외교 관계를 복원하고 싶다고도 했다.
시리아 내전 발발 후 일부 반군을 지원했던 튀르키예도 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반기는 모양새다. 현재 튀르키예에는 최소 300만∼400만 명의 시리아 난민이 거주해 국민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이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낼 계기가 마련됐다는 기대감이 높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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