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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한강과 윤석열‥노벨문학상과 비상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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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작가 한강이 여러 작품을 통해 천착해온 주제는 '고통'이었습니다.

고통의 공유와 연결은 현재형이라고 작가 한강은 말했는데요.

이번 수상은 우리 현대사의 고통을 작가가 문학을 통해 대리해온 데 대한 평가이기도 합니다.

김희웅 기자입니다.

◀ 리포트 ▶

대학살과 파괴의 도시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작가는,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숨을 거둔 언니를 떠올렸습니다.

스물세 살 젊은 엄마는 하얀 배내옷에 생명을 안고 호소했습니다.

또다른 학살의 도시 광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의 힘 분노의 힘' 때문이었습니다.

죽지 말라는 호소는 시공을 넘어서 이곳으로도 이어집니다.

이후 모든 계절에서, 모든 하루의 시작과 끝까지가 애도의 시간이었습니다.

['소년이 온다' 중]
"봄에 피는 꽃들 버드나무들 빗방울과 눈송이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아침,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고통을 끄집어내 기억하려 했습니다.

통나무들을 심어서 나무에 검은 먹을 정성스레 입힌 뒤에 흰 천 같은 눈이 하늘에서 밀려내려 그들을 덮어주길 기다리는 일.

죽은 자들에 대한 영원한 추모.

소설 속 두 여성은 제주 4·3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의식을 기획했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중]
"제목이 뭐야?… 우리 프로젝트 말이야… 인선이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작별하지 않는다…작별하지 않는다"

고통을 잊지 않겠다는 각오와 결의가 제목이 됐습니다.

[앤더슨 올슨/노벨문학상 위원회 위원장]
"한강은 현재에 드리워진 과거의 힘과 함께 집단 무의식에 빠진 무언가를 끄집어내려는 친구의 노력을 강조했습니다."

고통에 대해 말하면서 고통에 다가가려는 작가의 노력이 문학이 추구해야 할 가장 진실한 것이라고 평가받았습니다.

그러나 작가 한강의 영광입니다.

국가의 영광으로 가져올 수는 없었습니다.

고통을 가한 주체가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고통을 온전히 기억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망각되는 고통을 기억해 공유하고 치유하는 기회를, 우리 역사가 스스로는 온전히 해내지 못한 그 일을, 노벨문학상의 권위에 기대어서라도 '작별하지 않으려는' 이 겨울에 그 시절 가해자의 용어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

대한민국 체제전복 위협.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고통을 공유하고 치유하는 국가를 가질 자부심을 땅에 처박았습니다.

암울했던 우리 현대사에서 문학은 시대의 지성이자 등대였고 구원이기도 했습니다.

2024년 대한민국.

다시 '비상계엄'과 노벨문학상의 아이러니.

[한강/지난 7일, 스웨덴 한림원]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우리는 지금 어느 국가의 시절에 있는 것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문학은 역사에서 답을 찾으라는 주문을, 포기하지 말라는 희망을 제시합니다.

MBC뉴스 김희웅입니다.

영상편집: 허유빈 / 특수촬영: 김연주 / 디자인: 김양희, 조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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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편집: 허유빈 김희웅 기자(hwoong@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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