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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목)

[기자수첩]자국 철강 위해 팔 걷어붙인 美·獨…'국가 개입주의' 속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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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불황·中 공급 과잉에

위기의 철강 산업

중장기 대책 부재 韓 경제 리더십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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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산업은 독일에 없어서는 안 됩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최근 자국 철강업계와 만나 강조한 말이다. 숄츠 총리는 "산업에서도 가장 고용 인원이 많고 전략적으로 제일 중요한 산업 분야"라고 평가하며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해 강력한 지원대책까지 내놨다. 철강 분야 전기료를 ㎾h(킬로와트시당)당 3센트로 제한하고 내년 요금도 동결하겠다고 했다. 2022년 OECD가 조사한 독일 산업용 전기요금이 ㎾h당 20센트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지원이다. 철강 산업의 노동 안정화를 위해 단축 근무를 시행할 수 있도록 국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최대 24개월로 연장하기로 했다.

독일 대표 철강기업인 티센크루프는 지난 5년 중 4년 동안 적자를 기록했고 2030년까지 일자리 1만1000개를 감축할 것이라고 발표하자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미국 산업화의 상징으로 꼽히던 US스틸은 경쟁력을 잃고 일본제철에 팔리기 직전이지만 미국 정부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미국은 올해 연말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공식적으로 ‘불허’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2월 일본제철은 미국 산업화의 상징으로 꼽히는 철강업체 US스틸을 141억달러(약 20조원)에 매수키로 했지만 미국 정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일본제철의 US스틸 합병이 중국 철강의 공급 과잉으로 이어져 국가 안보에 위협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글로벌 불황과 중국의 공급 과잉 속에 ‘산업의 쌀’ 철강 산업을 지키려는 주요국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철강은 대표적인 후방산업으로서 자동차·조선·가전 등 소비재 전방 산업뿐만 아니라 방위산업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각국 정부가 철강을 ‘전략 지정학적(Geostratgic)’ 산업으로 일컫는 이유다.

우리 철강 역시 중국산 제품의 과잉 공급 속에 ‘미증유’의 위기 상황을 겪고 있다. 포스코·현대제철은 일부 공장의 가동 중지를 선언했고 해외 자산을 매각하면서 ‘애셋 라이트(자산경량화)’도 진행하고 있다. 대규모 적자를 기록중인 미국·유럽 대표 철강 기업들보다는 아직 상황이 낫지만 범용제품 뿐만 아니라 특수강 등 고부가가치 제품 분야에서 전방위적인 공세를 받고 있다. 철강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중·장기 계획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보조금·관세를 ‘자유 무역의 적’으로 간주하던 선진국들이 앞다퉈 보조금·관세 정책을 내놓고 있다. ‘맨주먹으로만 싸우자’는 룰을 세웠던, 가장 힘이 셌던 국가들이 ‘소총·야간투시경·장갑차’를 동원해 싸우겠다고 나선 것이다. 주요국이 자유무역 질서를 더이상 존중하지 않는 ‘국가 개입주의’가 팽배해 있는데 우리 정부의 대응 속도와 방법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최근에는 계엄·탄핵 정국으로 인해 정치·경제 리더십이 표류하고 있다. 빠르게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고 격변하는 세계 경제 속 우리 산업의 방향성을 다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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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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