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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금)

[여적] 부정선거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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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키스토크라시(kakistocracy)와 맞서 싸운다면, 우리는 더 나은 세상으로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 지난 10일 뉴욕타임스에 보낸 고별 칼럼에서 한 말이다.

카키스토크라시는 ‘최악’이란 뜻의 그리스 단어 ‘kakistos’와 ‘권력·통치’를 뜻하는 ‘cracy’의 합성어다. 문자 그대로 가장 자격 없고, 최악인 사람들이 운영하는 정부란 뜻이다. 영국 매체 이코노미스트는 이 단어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귀환으로 미국인 절반과 전 세계 대부분 사람들이 느낀 두려움을 가장 간결하게 요약한 단어”라고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아마 그 두려움은 12일 대통령 윤석열의 대국민 담화를 지켜본 한국 시민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선거 관리 전산시스템이 이렇게 엉터리인데, 어떻게 국민들이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있나”라며 “선관위는 강제수사가 사실상 불가능해 (계엄군에게)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부정선거 음모론자라는 사실을 자인한 셈이다. 이제까지 제기된 부정선거 관련 고발 사건 중 혐의가 입증된 것은 단 한 건도 없다. 대법원에 따르면, 2020년 총선 이후 126건의 소송이 제기됐으나 “객관적 근거가 없다”는 사유로 모두 기각·각하됐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방송인 김어준씨는 2012년 대선에 개표 부정 의혹을 제기한 영화 <더 플랜>을 제작해 투표 조작 의혹을 확산시켰다. 이런 음모론은 일단 한번 싹트면 지금 같은 정치적 양극화 상황에서 강력한 마타도어 도구로 활용된다.

대한민국이 이런 음모론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상식에 기초해 판단하는 대다수 평범한 시민들 덕분이다. 실제 부정선거가 이뤄지려면 내부 조력자가 조직적으로 가담해 실물 투표지를 바꿔치기해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극우 유튜브에 중독돼, 아무도 믿지 않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진 ‘최악의 시민’이 대통령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 이를 설명하는 가장 간결한 단어 역시 카키스토크라시가 아닐까.

경향신문

12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담화를 TV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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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논설위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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