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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아사드 독재 정권 붕괴… 내부 갈등-난민 귀환 등 난제 첩첩산중[글로벌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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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년 철권통치 무너진 시리아의 미래는?

‘시아파계 알라위파’ 아사드 일가… 佛 식민 시절부터 수니파 탄압

반정부 시위자 잔혹하게 응징… 오랜 내전에 체제 ‘허약’ 상태

이란-러시아 지원까지 줄어… 몰락 가속화하며 대통령 도피

반군 이끈 HTS, 과도정부 통치… 다민족-다종교 등 내홍 역사 길어

“언제든 분열 가능” 우려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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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년 독재정권 무너진 시리아, 앞날은

1971년 아버지부터 53년간 대를 이어 시리아를 통치했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8일 붕괴했다. 잔혹한 독재자는 사라졌지만, 과도정부를 이끌 반군 조직의 통치 능력은 우려스럽다. 13년간 내전이 이어졌던 시리아의 미래를 짚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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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이 (나 대신) 아사드가(家)에게 복수할 겁니다.”

뱌샤르 알 아사드 전 시리아 대통령(59)이 잔혹 통치를 하던 2011년 5월 아사드 정권에 아들 함자(당시 13세)를 잃은 어머니 아미르 알 카팁 씨가 최근 영국 BBC와 한 인터뷰다. 당시 아사드 정권은 “함자가 반정부 시위에 참여해 그를 사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함자의 시신에는 담배로 지진 자국이 가득했고 거세 흔적까지 발견됐다.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잔혹한 고문이 자행된 흔적이었다.

2019년에는 함자의 형이자 카팁 씨의 또 다른 아들 오마르마저 숨졌다. 오마르는 아사드 정권이 반대파를 대대적으로 처형해 ‘인간 도살장’으로 불리는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 ‘사이드나야 교도소’에서 옥중 사망했다. 카팁 씨는 러시아로 도피한 아사드 전 대통령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며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외쳤다.

1971년부터 53년간 대를 이어 시리아를 통치해왔던 아사드 정권이 8일 붕괴됐다.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뒤흔든 민주화운동 ‘아랍의 봄’ 당시에도 권좌를 지켰던 아사드 전 대통령은 수니파 무장조직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 샴(HTS)’ 주도의 반군이 지난달 27일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한 지 11일 만에 해외로 도피했다.

2011년 내전 발발 후 미국, 러시아, 이란, 이스라엘, 튀르키예 등 강대국의 각축전이 벌어졌던 시리아 내전이 반군의 승리로 끝나면서 중동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주요국은 시리아의 현 상황을 자국에 유리하게 전개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때 9·11테러를 주도한 수니파 테러단체 알카에다와 연을 맺었으며 미국 등 국제사회로부터 아직 테러단체로 지정된 HTS가 제대로 된 통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어떻게 53년 독재가 가능했는지, 내전은 왜 13년간 지속됐는지, 향후 시리아는 어디로 갈지 알아본다.

● ‘이이제이’ 佛 식민통치부터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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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민족 다종교 다종파 국가인 시리아는 1920∼1946년 프랑스 식민통치 시절부터 많은 갈등에 시달렸다. 약 2340만 명의 국민 중 수니파가 74%로 절대 다수다. 프랑스는 이들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전체의 약 13%인 시아파에 집중적으로 권력을 몰아줬다. 특히 아사드 일가가 속한 시아파의 분파 알라위파는 군대, 경찰 등에 집중적으로 기용됐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사람이 하페즈 알 아사드 전 대통령(1930∼2000)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젊은 시절 현재 시리아 정계의 핵심 세력인 ‘바트당(아랍사회주의부흥당)’에 가입해 승승장구했다. 국방장관이던 1970년 쿠데타를 일으켜 반대파를 모조리 제거했고 한 해 뒤 대통령에 올랐다.

그는 반(反)서방, 반이스라엘을 기치로 주변 아랍국과 연대하고 소련과 적극 협력했다. 미국과 냉전을 벌이던 소련은 시리아에 무기와 자금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페즈 전 대통령은 각국 독재자와도 적극 교류했다. 1974년 북한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을 만났고 같은 해 ‘동유럽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루마니아 대통령과도 회동했다. 싫든 좋든 국제사회에 시리아라는 나라를 각인시킨 것이다. ‘중동의 비스마르크’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그는 4남 1녀를 뒀다.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했던 장남 바실은 1994년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숨졌다. 이에 다마스쿠스대 의대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에서 안과 의사로 일하던 차남 바샤르 알 아사드 전 대통령을 긴급히 귀국시켰다.

2000년 하페즈 전 대통령이 심장마비로 사망했을 당시 아사드 전 대통령은 35세에 불과했다. 의회와 바트당은 그가 대통령직에 출마할 수 있도록 당시 헌법상 만 40세였던 대선 출마 자격을 만 34세로 낮췄다.

권좌에 오른 그는 초기에는 잠시 개혁 정책을 펼쳤다. 일부 반대파를 사면했고 외국계 은행의 영업을 허용하고 일부 국영기업도 민영화했다. 레바논 내 시아파 보호 등을 이유로 자국군을 파병했지만 군 철수도 단행했다.

하지만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그의 개혁 움직임도 멈췄다. 이슬람권은 미국의 이런 행보에 강하게 반발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바트당 원로들은 30대 젊은 대통령에게 “미국에 강하게 맞서라”고 압박했다. 이후 아사드 정권은 내내 반미, 반이스라엘 기조로 일관했다.

● 화학무기 사용 등 잔혹통치로 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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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이 발발한 2011년 시리아에서도 남부 다라를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아사드 정권은 함자 같은 미성년자에게도 잔혹한 고문을 일삼으며 무력 탄압에만 주력했다. 시위대도 ‘테러범’이라고 규정했다. 이에 시위대 또한 정부군과 본격적으로 맞서면서 길고 긴 내전이 발발했다.

아사드 정권은 반군에 국제법이 금지한 화학 무기까지 사용했다. 2013년 8월 반군 지지 주민이 많은 다마스쿠스 교외 구타에서 ‘사린가스’를 사용했다. 유엔에 따르면 이 공격으로 최소 1400명이 숨졌다. 2017년 4월에는 역시 반군의 주요 거점인 북부 이들리브주에 사린가스 공격을 자행해 최소 80명이 숨졌다. 2018년 4월에는 구타 일대에 또 화학 무기를 살포했다. 이때도 최소 50명이 사망했다.

수감된 반대파에게도 악명 높은 고문을 자행했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사이드나야 교도소에서는 수감자를 쇠막대 벨트 채찍 등으로 구타하고, 생식기에 전기 고문을 가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BBC에 따르면 일부 교도관은 수감자들에게 “서로를 고문하라. 따르지 않으면 처형하겠다”고 위협했다. 내전 기간 사이드나야 교도소에서만 최소 3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시리아 전역에서 최소 50만 명이 사망했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내전 장기화로 경제는 더욱 나빠졌다. 세계은행은 2021년 시리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421달러(약 60만 원)로 추정했다. 인구의 24.8%는 하루 2.15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절대 빈곤층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내전 기간 동안 고질적인 전력난이 더 심해져 최근에는 많은 주민이 옷을 태워 연료로 쓴다.

● 이란-러시아 발 빼자 ‘와르르’

이런 상황에서도 아사드 정권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와 이란의 지원 때문이었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시리아 서부 타르투스항에 해군 기지를 두고 있다. 이 기지를 통해 아사드 정권을 군사적으로 적극 지원했다. 특히 공군을 동원한 대대적인 공습을 퍼부어 반군을 저지했다. 이란,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는 지상군을 적극 도왔다.

2013년부터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북동부와 이라크 북서부 일대에서 ‘국가(state)’를 자처한 것도 아사드 정권의 생명을 연장시킨 측면이 있다. 산 사람을 공개적으로 화형시키는 극악무도한 IS를 격퇴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정부군과 반군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고 미국 등 국제사회도 IS 궤멸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오랜 교착 상태에 빠졌던 내전의 판도가 바뀐 것은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부터다. 지난해 10월부터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하마스를 지지하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두 개의 전쟁’은 러시아와 이란의 지원으로 연명하던 아사드 정권의 허약한 체제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연이은 공격으로 사실상 궤멸 수준에 이르렀다. 프랑스24에 따르면 아사드 정권을 돕던 헤즈볼라 전투원 1만 명은 올 9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레바논 남부에서 본격적인 지상전을 벌이면서 시리아에서 속속 철수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러시아의 지원 또한 급감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는 헤즈볼라 대원들이 철수한 가운데 이란이 시리아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아사드 정권의 몰락이 가속화했다고 진단했다.

● HTS 통치 능력 ‘기대 반 우려 반’

국제사회는 새 과도정부를 이끌 HTS가 어느 정도의 통치 능력을 보여줄지 주목하고 있다. 약 2만 명의 조직원을 보유한 HTS는 2017년부터 인구 약 470만 명의 북부 이들리브주를 사실상 통치했다. 수장은 한때 알카에다에 몸담았지만 2016년 결별한 아부 무함마드 알 줄라니(42). 이슬람 원리주의에 의한 통치를 강조하지만 “여성의 히잡 착용을 강요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른 종파와도 협력할 뜻을 밝히는 등 최근에는 유화적인 행보를 강조하고 있다.

2017년 설립한 민간행정조직 SSG를 과도정부의 통치에 활용할 뜻을 밝혔다. 보건, 교육, 지방 재건 등 10개 부처, 총인원 75명의 정치자문(슈라) 위원회로 구성됐다.

HTS는 7년간의 이들리브 통치 당시 오랜 내전으로 지친 주민들에게 식량 및 전기 보급 등으로 민심을 얻었다. 2023년 초 시리아 북부와 튀르키예 남부에서 발생한 대지진 때도 국제 구호단체의 지원을 거들었다.

다만 시리아 내부의 분열 및 갈등 역사가 워낙 오래된 탓에 HTS가 안정적인 정부 운영을 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성일광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반군은 HTS뿐 아니라 쿠르드족 등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단체의 집합체 성격이 크다. 언제든 분열의 씨앗이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BBC 역시 HTS에 동의하지 않는 반군 세력 또한 상당하다며 이들이 모두 일정 부분 권력을 행사하기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아직까지는 누가 누구의 적이고 우군인지 구별하기 어렵고, 이해관계 또한 제각각 다르다.

오랜 내전으로 시리아 땅을 떠났던 약 500만 명의 국민을 어떻게 귀환시키고 어디에 정착시킬 것이냐는 사안은 과도정부의 또 다른 과제다. 내전 기간 동안 이들을 수용했던 오스트리아 독일 벨기에 영국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유럽 각국은 벌써부터 “이제 더 이상 시리아 난민을 받지 않겠다”며 빗장을 걸고 있다. 하지만 이미 서유럽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진 상당수 난민은 아사드 정권의 붕괴와 무관하게 고국의 정치 사회적 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자발적 귀환을 망설이고 있다.

● 강대국 각축전 시작

주요국은 벌써부터 이런 상황을 자국에 유리하게 이용하느라 바쁘다. 가장 먼저 나선 곳은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8일 시리아와의 영유권 분쟁지인 골란고원 내 헤르몬산 일대의 시리아군 기지를 재빨리 점령했다. 9일에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불과 약 20km 떨어진 까타나에 지상군을 진격시켰다. 같은 날 시리아 서부의 요충지인 라타키아항과 타르투스항에도 대대적인 공습을 퍼부었다.

이스라엘은 겉으로는 “아사드 정권이 보유했던 생화학무기가 IS 같은 테러단체로 넘어가는 것을 막고 아사드 정권을 지원한 러시아와 이란에도 ‘더 이상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를 날리기 위해서”라는 뜻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부패 혐의 등으로 현직 총리 최초로 형사 기소돼 10일 법정 출석까지 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정치 생명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헤즈볼라 격퇴에 이어 시리아 군사 공세 강화 등을 치적으로 내세우며 핵심 지지층인 보수 유권자를 결집시키고 있다. 이번에 점령한 시리아군 기지를 결코 돌려주지 않겠다는 뜻도 강조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또한 현 상황의 주요 승자라고 분석했다. 시리아와 국경을 접한 튀르키예는 내전 발발 후 전체 시리아 난민의 약 70%(약 350만 명)를 울며 겨자 먹기로 자국 땅에 수용해야 했다. 이로 인한 사회적 부담이 누적되면서 곳곳에서 “시리아 난민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난민 수용 부담을 일거에 털어낼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헤즈볼라, 시리아 등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시아파 벨트’를 구축해온 이란은 아사드 정권의 붕괴로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송웅엽 전 주이란·이라크·아프간 대사는 “이란에 적대적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재집권까지 겹쳐 이란이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고 진단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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