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시절인 2021년 7월 부산 국밥집에서 소주를 마시는 윤 대통령.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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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에 떨어진 사람을 향해 만인이 돌을 던질 때 거기에 작은 돌 하나를 보태는 일은 보람이 없다. 양심이 부대끼는 일이다. 그러나 한때 윤석열 대통령 개인의 행운과 대한민국의 국운이 일치하기를 기원했던 일인으로서 소회가 없을 수 없다.
나는 그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는 소문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위대한 예술가나 사상가 중에 술고래였던 사람은 헤아릴수 없이 많지만 위대한 리더 중에서는 거의 없다. 적어도 리더인 기간에는 술을 자제했다. 리더는 일하는 시간과 업적이 비례하는 직업이다. 제 아무리 천재라도 물리적 성실함이 필수다. 특히 대통령중심제의 대통령은 매일 읽어야 할 보고서가 산더미이고 전문가집단의 견해를 직접 들어야 하고 그 중간중간 결정을 내려야 한다. 술 마실 시간은 몰라도 취해 있을 시간은 없다.
나는 선후배들과 점심을 할 때 막걸리를 반병(기분이 좋으면 한 병) 정도 마시는 습관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 반주가 그야말로 일상다반사였던 한세대 위 언론인 중에는 음주가 어느 정도 업무 능률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헛소리다. 큰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마실뿐 도움이 될 리가 없다. 관련 일화 하나.
첫 직장에서 만난 선배 한 분은 독하게 일하고 술로 그 독을 푸는 스타일이었다. 내가 부장으로 모실 때는 이미 술이 많이 약해진 연배여서 초장부터 취기가 흥건하였다. 회식이 파하면 그를 집까지 ‘배달’하는 과업이 막내에게 떨어졌다. 택시 안을 집의 화장실로 착각한다든가, 집 안방문을 열듯 택시 문을 열어젖히는 사태에 대비해 피의자를 호송하는 수사관처럼 옆에서 집중 경호를 했던 기억이 난다. 늘 감탄했던 것은 그렇게 취했던 분이 아파트 동 앞에 마중 나와 있는 형수를 보면 정신이 바로 깬다는 것이었다. 갈지자 행보가 똑바로 서곤 했다.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케빈 스페이시를 보는 듯했다.
유능했던 그는 편집국장이 되었는데 명령장이 떨어진 그날부로 술을 끊었다. 완벽히. 술을 끊고도 사기관리 차원에서의 회식은 자주 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회식이 얼마나 힘이 들었겠나. 그는 명(名) 편집국장 소리를 들었다.
일개 신문사 편집국장직을 수행하기 위해 술을 끊는 판에 일국의 대통령이 되어서 소폭을 두 자릿수 단위로 마시는 것을 뭐라고 해야 할까. 직무의 무게에 대한 이해 결여 아닌가. 그렇게 마시고 감정이 격해지지 않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자신이 어제 한 말과 판단에 구애받는 존재다. 취해서 한 말과 행동이 이튿날 0이 될 수 없는 이유다. 감정적 판단과 극단적 언어가 누적이 된 끝에 ‘계엄’에 이른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지도자의 음주가 위험한 이유는 감정과 판단을 흐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수많은 ‘차지철’과 ‘김재규’를 낳는 게 몇 배 더 위험하다. 술은 사람을 가리는 취미활동이어서 멤버 구성이 배타적이다. 추경호는 부르고 한동훈은 안 부른다. 번개 치는 상대는 늘 친윤뿐이다. 혹은 충암고 동문. 대통령이 술을 만날 차지철들과 마시면 어떻게 되는 줄 아는가. ‘싹 갈아엎으면 되지’ 같은 소리가 나온다. 나는 맨정신에는 선배들한테 간혹 어깃장을 놓지만 술자리에선 맞장구 치기도 바쁘다. 하물며 차지철들은 어떻겠는가. ‘갈아엎으세요. 싹!’ 맞장구친 것 아닌가.
그러나 알코올에 취하는 것은 작게 취하는 것이다. 진짜 위험한 것은 반복된 행운에, 자신의 운명에 취한 지도자다. 6.25 때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는 “중국 국경까지 적군을 몰아내고, 북한을 해체하여 한반도를 이승만 통치 아래 통일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는 중국 국경에서 진격을 멈추겠다는 약속도 하지 않았다. 이런 맥아더를 한국 민족주의자들은 지금도 눈시울을 적셔가며 칭송하지만 결국 중공군 참전을 부르고 말았다. 다 이긴 전쟁을 놓친 것이다. 그는 대만으로 쫓겨간 장개석의 군대를 중국 본토에 투입하고 만주에 전술핵을 투하할 것을 트루먼 행정부에 요청했다. 그것은 3차 대전을 의미했고 일개 장군이 대통령에게 요구할 일이 아니었다. 군사적, 정치적으로 미친 주장이었다.
맥아더는 미국 역사상 가장 허영심이 강했던 군인이다. “맥아더는 자신이 천국의 대문에 다다르면 신이 하얀 옥좌에서 내려와 그에게 절을 하고, 그를 빈 옥좌로 안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유형의 인물이었다”고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내무장관을 역임한 헤럴드 아이크스는 말했다. 맥아더는 미국 육사를 수석 졸업했고 1차 세계대전 때 이미 영웅이었으며 2차대전 태평양 전선 대역전극의 단독 주연이었다. 항복조인식에서 일본 천황을 아랫사람처럼 보이게 한 그는 ‘미국의 카이사르’라 불리길 좋아했다. 행운이 거듭되면 운명이라고 착각한다. 맥아더는 운명을 과신한 나머지 마지막 전장에서 불명예 퇴역했다. 역사상 최악의 에고이스트 중 한명이 되고 말았다.
나는 윤 대통령의 저 소문난 쇠고집, 에고의 뿌리가 어디인지 궁금하다. 그는 중산층 가정에서 나고 자라 한국 최고학부를 바로 들어갔다. 그런 그에게 사법고시 9수는 어마어마한 좌절이었을게 분명하다. 9수를 했다는 것 자체로 보통 사람은 아니거니와 그 고행 끝에 기어코 검사가 되었으니 ‘운명이여 덤벼라’ 류의 굉장한 에고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에게는 죄다 상관이 된 대학 후배들 앞에서 계면쩍어하지 않는 배포, ‘형’으로서 사적 자리를 주도하는 리더십이 있었다. 9수 만에 들어온 사람이 그렇게 당당하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다.
운도 따라서 국정원 댓글 수사로 박근혜 정부 눈 밖에 난 것이 오히려 큰 자산이 됐다. 국정농단 특검 팀장을 지낸 데 이어 문재인 정부의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알다시피 조국 사태때 문 정권과 척지면서 일약 대권주자로 부상했고 정치에 도전한 지 몇개월 만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다.
이런 경력을 거친 사람이 운명에 대한 자의식이 강하지 않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9수 낙방거사’의 굴욕을 돌파했고, 박정권의 탄압을 돌파했고, 문재인 정부의 무도함과 싸워 이겼다. 인생에서 9수 같은 좌절이 없었던 맥아더보다도 더 오만해질 여지가 충분하다. 맥아더가 평생 프리마돈나처럼 독보적 우아함을 뽐낸 유형이라면 윤석열은 ‘야 내가 다 싸워봤잖아. 거 별거 아니더라고’ 하면서 우쭐대는 스타일이다. 60분 대화 중 55분을 점하는 다변, 무슨 주제든 다 아는 척하는 버릇, 결국 모든 결론을 다 ‘자유’로 몰고 가는 단순한 사고는 ‘내가 이겨봐서 안다’는 자기 확신에 기반하고 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윤 대통령이 9수를 하지 않고 3수나 4수 정도에 검사가 되었더라면, 박근혜 정권 이후 그의 관운이 그토록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았다면 우리가 본 윤석열 대통령은 퍽 다르지 않았을까. 물론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99.9%이겠지만. 운명이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운명을 극복했노라 자부하는 것이 더 큰 오만이다. 어제 탄핵당한 윤 대통령의 작은 잘못은 술에 자주 취했다는 것이고 더 큰 잘못은 운명 앞에서 오만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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