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2월3일 밤 긴급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헌정 질서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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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정 | 논설위원
지난 14일 국회에서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취임 2년7개월 만에 윤 대통령의 직무가 공식적으로 정지됐다. 2024년 12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을 시민의 힘으로 가까스로 멈춰 세운 것이다. 과거에도 ‘설마’ 했던 일을 아무렇지 않게 현실화했던 윤 대통령이지만, ‘친위 쿠데타’까지 일으켜 정적 제거를 시도했다는 각종 증언과 정황을 보다 보면 ‘이런 자가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나’라는 허탈함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12월12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12월14일)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으니, 그에게 ‘국민’이란 10% 안팎의 극우 지지층이었다는 사실만 또렷해지고 있다. 특히 29분에 걸쳐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한 지난 12일 대국민 담화는 온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독단적 세계관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그는 야당을 “국정 마비와 국헌 문란을 벌이고 있는 세력”으로 규정하며, 탄핵 시도를 “광란의 칼춤”이라고 원색 비난했다. 하지만 연일 폭로되는 군과 경찰 지휘부의 증언은 윤 대통령의 ‘계엄 진심’을 확증하고 있다. 이미 고교 후배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윤 대통령이 초여름부터 사석에서 여러 차례 계엄을 언급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계엄 이틀 전에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에게 계엄 선포를 귀띔했고, 계엄 선포 3시간 전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에게 장악 기관 리스트를 전달했다. 국회에 “질서유지에 필요한 소수의 병력만 투입”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출동 대기한 군 병력이 1600명에 이르는 것(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으로 파악됐다. “거대 야당에 대한 경고”였다는 주장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자신의 ‘눈엣가시’를 체포·구금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이 드러나며 무력화됐다. “(본회의장) 문을 부수고 들어가 의원들을 끌어내라”(곽종근) “싹 다 잡아들여라”(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등 구체적 지시를 받았다는 증언도 이어진다. 대체 누가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던 건가.
수사 기관에 가기 전 병원부터 들러야 할 것 같은 망상과 궤변이지만, 천연덕스러운 거짓말도 이 정도면 그의 ‘진심’으로 평가해야 한다. 특히 야당의 비판과 견제를 “대선 결과를 승복하지 않은 것”이라는 강변은 ‘대선 승리’와 ‘절대 군주’를 등치시킨 그의 거대한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 2년7개월을 돌아보면 새삼스럽지도 않다. 취임 첫해 온 국민의 청력을 테스트한 ‘바이든-날리면’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자신과 김건희 여사가 각각 연루된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을 비롯해 국회를 통과한 법안 25건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배우자를 ‘정권의 성역’으로 만들어놓았고, 국가기관은 김 여사 앞에서 무력화됐다. ‘대책 없는’ 의대 2천명 증원을 포함한 숱한 정책 혼선의 중심엔 윤 대통령이 있었다.
물론 그가 이런 오류를 인정한 적은 없다. 오히려 자신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채 발목만 잡는 야당과 언론을 향한 증오심만 키웠을 뿐이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한 여권 인사는 윤 대통령이 “한번 싹 쓸어버리고 싶다”는 말을 여러차례 했다고 털어놨다. 공공연히 계엄 로망을 표출한 그에게 군은 가장 믿음직스러운 존재였던 것 같다. 통수권자에게 보여주는 군의 일사불란함과 충성심을 ‘군주 윤석열’에 대한 것으로 오인했을 가능성도 있다. 틈날 때마다 군부대를 찾고, ‘군사주의 잔재’ ‘예산 낭비’ 비판을 무릅쓰며 전두환 정권 이후 40년 만에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2년 연속 개최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군인들의 경례를 받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특유의 독선과 아집, 극우 유튜브를 보며 형성한 세계관, 군과 경찰에 대한 시대착오적 인식, 스스로를 절대 군주의 반열에 올려놓은 자의식이 결합된 결과가 국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댄 12·3 내란사태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채 국민의힘의 ‘탄핵 트라우마’를 인질 삼아 버티던 지난 11일간의 대치는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일단 막을 내렸다. 그는 마지막까지 비상계엄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이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을까 답답하다”고 했다. ‘국민 통합’이라는 대통령의 소명을 끝내 저버린 윤 대통령에게 그가 입버릇처럼 주장한 ‘반국가세력’의 딱지를 돌려줘야 한다.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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