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7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2023 바르게살기운동 전국회원대회’에서 홍준표 대구시장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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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 |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명태균이 국민의힘 대선 경선 과정에서 여론조작을 했다. 윤석열은 이득을 보았고, 홍준표는 손해를 보았다. 그런데, 홍준표의 공격은 윤석열이 아닌 명태균을 향했다. 지인이 의문을 풀어주었다. ‘배신자론’ 때문이었다.
보수정당의 배신자론은 역사가 있다. 한나라당에서 의원·도지사 등을 역임하다가 민주당으로 옮겨간 손학규를 향한 비난, 2015년 국정교과서를 반대했던 새누리당 정두언 역시 빨갱이 비판을 들어야 했다. 배신자 비판이 ‘론’으로 승격된 것은 박근혜 탄핵 사건 이후인 듯하다. 탄핵에 찬성한 유승민, 김무성 등에 대해 홍준표 등은 ‘보수는 배신자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배신자론을 무기로 보수의 중심을 차지했다.
배신자론의 내용은 이렇다. 보수는 ‘주군’을 배신하지 않는다. 합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아도 그래서 당장은 대중의 공격을 받아도, 인내를 가지고 주군을 보호하라. 그러면, 결국 당신은 보수의 핵심으로 남는다. 윤상현이 주장하듯 시간이 지나면 시민들은 선악이 아닌 의리와 배신으로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의리와 배신이라니. 조폭집단이면 이해가 가지만, 자유민주주의와 공공성을 강조하는 보수정당의 핵심 담론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윤석열의 탄핵 국면에서도 어김없이 배신자론이 핵심 담론으로 등장한다. 그 중심에는 박근혜 탄핵을 반대했다는 ‘자랑스러운’ 이력을 가지고 있는 홍준표가 있다. 이번에도 그는 ‘주군’의 잘못을 눈감는다. 그리고, 배신자는 보수가 아니며, 주군과 당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의 말이 옳을 수 있다. 홍준표나 아직 건재한 이른바 ‘중진의힘’이 그 증거이다. 탄핵 과정에서 보수를 주도하며 배신자론으로 젊은 보수 정치인들을 겁박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보자. 옳고 그름의 관점이 아닌 그들이 좋아하는 ‘성공’의 관점에서 보자. 배신자론의 한계는 확장성이다. 홍준표는 2017년 19대 대선에서 24%를 득표하며 간신히 2등에 머물렀다. 서울, 인천, 경기에서는 3등이었다. 이듬해 그가 자유한국당 대표로 이끌었던 7회 지방선거에선 참패를 당했다. 2020년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황교안의 지휘 아래 21대 총선에 나섰지만, 또다시 참패했다.
흥미롭게도 최근 보수정당이 강했던 시기는 박근혜를 구속했던 윤석열이 대통령 후보였던 20대 대통령 선거, 그리고 박근혜 탄핵에 찬성한 배신자 이준석이 당을 이끌었던 2022년 8회 지방선거였다. 이때는 수도권에서도 매우 강했다. 하지만 쇄신을 거부하고 이준석을 내쫓으며 새로운 주군 윤석열의 ‘의리파’들로 뭉쳐서 치렀던 2024년 22대 총선에서 다시 참패했다.
감히, 예측하건대 탄핵 이후 대한민국 보수의 운명은 ‘배신자론’에 달려 있다. 이 배신자론이 다시 주류담론화에 성공한다면 이른바 ‘중진의힘’을 중심으로 안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극우적이고 더 수구적으로 변할 것이며, 그들의 확장성은 영남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홍준표가 서울을 피하고, 대구로 기를 쓰며 들어갔듯이. 그리고 가장 기뻐할 이들은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이다. 역설적이게도 배신자론을 외치는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배신자론을 극복한다면 당장은 개혁신당과 한동훈, 안철수, 오세훈 등이 약진하며 보수는 혼돈의 시기를 맞이할 것이다. 이런 혼돈이 정리된 뒤에는 민주당이 마땅히 두려워할 보수정당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서울·경기에서 민주당에 밀릴 이유가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경로 탈피를 이끌 젊은 힘이 있을까.
나는 배신자론이 승리하여 민주당이 미소 짓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아가 민주당은 자신만의 배신자론은 없는지 성찰해야 한다. 리더의 잘잘못은 평가하지 않고,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고, 그를 공격하는 자들을 더욱 강하게 공격한다면, 그것은 보수의 배신자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이들은 또 다른 수구일 뿐이다.
‘친박, 배신을 두려워 말라’라는 2016년 12월16일치 중앙일보 전영기 논설위원의 칼럼 마지막은 다음과 같다. “보수는 흠 없는 완전체가 아니다. 고장이 나면 손질해야 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성질과 유사하다. … 보수를 분열시키고 보수가치를 무너뜨린 박근혜를 버려야 한다. 지키기 위해 변화하는 건 보수의 장점이다. 보수가 새 리더십을 세워 스스로 수선하고 새 집을 지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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