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에너지를 골고루 받기 위해서는 산 전체를 한바퀴 돌 필요가 있었다. 라운드 트레킹이다. 라운드 트레킹을 축소한 것이 불교의 ‘탑돌이’이다. 탑을 가운데 놓고 계속 빙빙 도는 일이다. 탑 속에 있는 진신사리(眞身舍利)의 에너지를 돌면서 받는 것이 탑돌이다. 탑을 볼 때마다 라운드 트레킹을 생각한다. 패션모델 사진 찍다가 전환하여 국내의 돌탑을 전문적으로 찍는 양현모(61) 작가. “왜 돌탑을 찍냐?” “변하지 않는 마음에 대한 그리움이다. 천년이 넘게 그 자리에서 그대로 지키고 있는 탑을 볼 때마다 인간의 얄팍한 변덕심이 위로받는다”.
그가 꼽는 탑들 몇 개. 경북 영양 산해리 5층 모전석탑이 있다. 마른 탑이 아니고 후덕해 보이는 탑이다. 아침에 떠오르는 햇볕을 받으면 탑 전체가 금빛으로 빛난다. 황금으로 치장된 탑으로 보인다.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충만감이 든다. 충남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 백제의 균형 잡힌 단아한 미를 대표하는 석탑이다. 1층 탑신에는 백제 멸망 당시 당나라 소정방의 업적이 새겨져 있다. 망국의 설움을 간직한 탑이면서도 그 우아함을 잃지 않고 있다. 강릉 신복사지 3층석탑. 탑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보살 좌상이 이색적이다. 보살상의 살짝 미소 짓는 온화한 얼굴 표정이 묘사되어 있다.
경주 감은사지 3층 석탑.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으며 안정감을 준다. 신라 국운 상승기의 안정감이 묻어난다. 구례 화엄사 4사자 삼층석탑. 4마리의 사자가 탑을 받치고 있다. 화엄사 각황전 뒤편 동백나무 숲을 끼고 있는 돌계단을 올라가면 나타난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내려오는 가장 센 기운을 여기에서 잡아주어 머물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전남 강진 월남사 3층 석탑. 고려시대 탑이다. 석탑 뒤로는 불꽃같은 기세를 머금고 있는 월출산 천왕봉이 서 있다. 천왕봉이 내뿜는 불기운을 이 탑이 받아 주고 있다. 160km 강속구를 받아주는 캐처 글러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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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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