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시내의 우마야드 광장에서 수백만명의 시리아 국민이 국기를 흔들며 알아사드 정권의 몰락을 기뻐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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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일이 일어나고, 무너질 수 없을 것 같았던 것이 무너진 열흘이었다. 시리아에선 13년 동안 이어진 내전이 반군의 승리로 끝났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세습하며 54년간 이어져 온 알아사드 정권은 몰락했다.
독재 치하에서 숨죽이며 살아온 시리아 국민, 내전을 피해 고국을 떠나야 했던 수백만 시리아 난민은 되찾은 자유에 환호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기쁨이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폭력의 가장 잔인한 속성은, 그것이 끝날 듯 결코 끝나지 않고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온다는 데 있다. 서방 세계는 알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린 시리아 반군의 핵심 세력이 이슬람 근본주의에 뿌리를 둔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이라는 것을 우려한다. 이들이 당장은 포용적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권력 확장을 위해 다른 종교를 탄압하고 여성을 억압할 것이라는 논리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폭력은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추동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주변 열강들이 시리아 내 자국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물밑 작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튀르키예는 정국 안정을 주도하고 있는 HTS가 아닌 자국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다른 반군 세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최악의 경우 리비아에서 카다피 정권 축출 후 반군끼리 2차 내전이 벌어졌던 상황이 재현될 수도 있다. 국경을 맞댄 이스라엘은 또 어떤가.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영토 내 완충지대까지 진군하고, 알아사드 정부군의 전략 자산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주요 도시 군사시설에 대규모 공습을 이어가는 중이다. 알아사드 정부군을 물심양면 지원했던 러시아도 군사기지에서 철수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최근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했던 한 시리아 청년은 “우리는 단 한 번도 스스로 운명을 결정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 반세기 동안 이어진 독재 정권, 강대국들의 체스 판이 된 내전. 여러 형태로 중첩된 폭력 아래서 이 나라 국민들은 죽거나, 떠나거나, 살기 위해 스스로 목소리를 없앴다. 그 무자비한 시대가 수십 년 만에 일단락된 상황을 외부인들이 ‘권력 공백’이라 부르며 함부로 개입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고 기만이다. 시리아인들이 주권국가의 국민으로서 자신들의 선택과 결정으로 나라를 재건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금요일 시리아 전역의 광장은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다마스쿠스 우마야드 모스크 광장에선 수백만 명이 모여 “시리아 국민은 하나”라는 구호를 외쳤다. 기독교 성직자, 이슬람 수니파, 심지어 알아사드 정권을 배출한 알라위파까지 한데 모여 행진했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소녀들은 히잡을 쓰지 않은 채 국기를 흔들었다. 이들이 자신의 손으로 폭력과 억압의 시대를 끝내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민주 국가를 만들 수 있길 바란다. 그 모습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세계 곳곳의 다른 이들에게도 어떤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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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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