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 여성 주축 '탄핵 촛불'…케이팝 부르며 추위 녹여
50대 응원봉 사고, 20대 민중가요 듣고…세대 간 화합도
"못 가면 김밥이라도" 식당 선결제하고, 핫팩 나눔하고
"차별·배제 발언 금지" 집회 시작 전엔 '약속문' 읽기도
전문가들 "21세기형 새로운 시민 저항 방식 탄생"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이 지난 11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재표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국회 앞에서 진행하는 가운데 시민들의 응원봉이 다양한 색깔로 빛나고 있다. 주보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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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사태 이후 불과 11일 만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기습적인 비상계엄이 선포·해제됐던 때부터 탄핵소추안이 재표결 끝에 국회 문턱을 넘는 순간까지 국회 앞을 지킨 건 무수한 '시민'이었다.
수백만 명의 시민이 국회 앞 도로를 메우는 동안 광장의 모습도 새로워졌다.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요구하는 11일 간의 촛불집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연대'와 '화합'이 강조되는 새로운 집회 문화가 탄생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집회에서 확인된 여성 젊은층의 힘…세대 간 '화합의 장' 열린 광장
비상계엄이 해제된 4일부터 탄핵안 가결까지 매일 시민들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종로구 광화문 등 광장에 모여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했다. 특히 탄핵안 표결이 이뤄진 주말에는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 등 주최 측 추산 수백만 명의 시민이 운집했다.전문가들은 이번 '탄핵 촛불 집회'의 가장 큰 특징으로 젊은층, 그중에서도 특히 젊은 여성이 집회의 주축이 됐다는 점을 꼽았다. 서울시 실시간 도시데이터를 보면, 윤 대통령에 대한 첫 탄핵소추안 표결이 있던 날인 지난 7일 오후 5시 기준 국회 주변에 모인 사람들 중 21.3%, 즉 5명 가운데 1명이 10대·20대 여성으로 나타났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김윤태 교수는 "젊은 여성이 집회에 많이 나왔다는 점, 케이팝(K-POP) 대중문화가 상당히 큰 역할을 한 점이 새로운 특징"이라며 "단기적으로는 윤석열 정부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고 여성 혐오 범죄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은 점, 장기적으로는 남녀 불평등이 여전한 점이 여성의 참여를 이끌어냈다"고 분석했다.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신경아 교수는 "여성들은 늘 광장을 지켜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 집회 때는 중장년층이 중심이 됐다면 이번엔 청년 여성들이 대규모로 참여한 것"이라며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방식, 즉 노래(K-POP)을 부르면서 응원봉을 흔드는 방식이 광장으로 옮겨왔다"고 분석했다. 이어 "젊은 여성이 주도하는 집회 방식이 자칫 얼어붙거나 폭력적일 수 있는 광장 분위기를 풀어줬고 이로 인해 광장의 진입 장벽을 낮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촛불 집회에서는 젊은층과 중장년층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세대 간 화합'의 모습도 돋보였다. 주말마다 국회에서 열리는 집회에 아이돌 그룹 '몬스타엑스'의 응원봉을 들고 참여했다는 강지수(26·가명)씨는 "이번 기회에 임을 위한 행진곡, 상록수, 김광석씨의 광야에서 등 민중가요를 음악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에 추가해서 듣고 있다"며 "집회에서 많이 접하다 보니 이제 따라 부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강씨는 "탄핵안이 부결된 7일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옆에 계신 50대 아주머니가 '이제 곧 좋은 날이 올텐데 왜 우냐'며 위로해 줄 때 부모님 세대와 우리가 어쩌면 같은 목표를 바라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첫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된 지난 7일 서울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한 한 시민이 아이돌 그룹 'NCT'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주보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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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젊은층과 함께 어우러지기 위해 응원봉을 구매했다는 이석현(50·가명)씨는 "딸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엔씨티(NCT)'의 응원봉을 공식 홈페이지에서 구매하는 경험을 처음 해 봤다. 정품을 사는 게 매너라고 해서 일부러 정품을 샀다"고 말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씨는 "젊은 세대에게 개인주의가 강하다고 하고, 'MZ세대'라는 말 역시 꼭 긍정적인 말로 쓰이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번 촛불 집회를 통해) 이들(젊은층)도 공동체 가치를 함께 알아가는 사람들이란 걸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선결제, 나눔으로 '연대'…집회 전엔 "차별 금지" 약속문 읽기
'탄핵 촛불 집회'에서 두드러졌던 또 하나의 특징은 '식당 선(先)결제'와 '나눔'으로 대표되는 연대의식이었다.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인근 식당 두 곳에 지난 9~10일 김밥 50줄과 만두 50판을 미리 결제 해 뒀다는 최영원(36·가명)씨는 "직장인이라 평일에 매일 집회를 갈 수 없어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시민들이 든든하게 챙겨 먹고 집회를 하셨으면 해서 김밥과 만두를 선결제했다"며 "이렇게 하면 경제 활성화나 상생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아이돌 그룹 팬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선결제하거나 무언가를 나누는 게 당연한 문화다"라고 설명했다.
비영리단체 커뮤니티매핑센터가 제작한 '여의도 화장실지도' 웹사이트 화면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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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지난 14일 윤 대통령의 두 번째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던 날엔 집회 현장에서 과자, 핫팩 등을 '나눔'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회 인근 식당과 카페에 선결제가 이어지면서 온라인상에선 '선결제 목록'을 정리해둔 사이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밖에 여의도 인근 화장실 위치를 정리한 지도, 주차장과 쉼터 지도 등도 제작돼 온라인에 공유됐다.
집회 시작 전 주최 측이 '모두의 광장'을 위해 약속문을 읊는 순서를 가졌다는 점도 눈에 띄는 특징이었다. 1만 5천여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약속문'에 "민주주의는 성별, 성적지향, 장애, 연령, 국적 등 서로 다른 사람이 배제되지 않고 안전하고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곳에서 가능하다"며 "집회 발언 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김윤태 교수는 11일 간의 윤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 집회에 대해 "사람들끼리 화합하려는 하나의 축제장같이 된 독특한 문화다. 다른 나라에서도 모방하거나 참고할 수 있는 21세기형 새로운 시민 저항 운동"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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