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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월)

[시론]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한국의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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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울경제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현재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외형적으로만 그들이 동일한 현재에 존재할 뿐이다.”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구시대의 잔재가 현재와 공존하는 독특한 사회 균열적 현상을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형용모순으로 일컬었다. 누군가는 인공지능(AI) 시대를 살아갈 때 다른 누군가의 시계는 여전히 전근대적 시간에 멈춰있다. 정치권에서 계엄 논의가 흘러나올 때 나는 일부 야당 의원들이 여전히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시계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냐고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정작 시간이 멈춰져 있던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으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그는 우리의 시간을 민주화 이전으로 되돌리려 했다.

야당의 탄핵권 남발과 과도한 정부예산안 감액이 직접적 계엄 선포의 이유였다. 정치로 풀어볼 수 있는 입법부·행정부 간 갈등 문제를 군대를 동원한 폭력적 수단으로 일거에 해결하려 했다. 입법부를 독재 세력이라 칭하면서 민의의 전당인 국회와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에 군대를 투입했다. 계엄을 통해 언론·출판 및 집회의 자유를 금한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이쯤 되면 누가 진정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가에 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하버드대 레비츠키와 지블렛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정치 규범으로 상호 관용과 존중, 제도적 자제를 강조했다. 최근 한국 사회는 극도의 진영 대립과 정서적 양극화로 여야 간 상호 관용이 사라지고 제도적 자제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2년 전 대선에서 0.7%포인트 차의 박빙 승부 이후 국론 수습이 최우선 과제였으나 대통령과 여당은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만 집중하며 영수회담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국회 개원식과 예산안 시정연설에도 불참하며 야당과의 협력을 외면했고 이에 야당은 정부 인사 탄핵과 예산 삭감을 남발했다. 결국 대통령은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며 정치적 선을 넘었고 정서적 양극화를 해결하지 못한 채 독단적 행보로 큰 사태를 초래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보수 가치를 내세웠지만 이번 계엄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보수 가치를 스스로 해쳤다.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시장 불안과 경제 리스크를 유발하며 대외 신인도를 하락시켰다. 민주주의 정상회의 유치를 통해 미국의 가치 외교에 동참했지만 계엄으로 미국 정부의 외교적 불신을 초래했다. 무엇보다 수십 년간 이룩한 정치·경제·사회적 유산을 위협하고 헌정질서를 파괴하려 한 그의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을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헌정 사상 세 번째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여권 내 계파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담화를 발표했고 여의도에서는 환호가, 광화문에서는 분노가 터져 나왔다.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단 전까지 진영 갈등과 정치적 불확실성은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불안정한 한국을 우려하며 주시하고 있고 국정 책임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 부재에 국민들의 분노는 커지고 있다. 조속히 우리 시계를 비상 계엄 사태 이전으로 되돌려 놓을 필요가 있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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