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에 처한 동맹에 피난처로 자리매김
권위주의 체제서 러시아 영향력 과시
아사드, 경호 받으며 호화 생활할 듯
"충성 동료 철저히 보호" 푸틴 철학
2020년 1월 7일 바샤르 알아사드(오른쪽) 시리아 대통령 과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다마스쿠스의 역사적인 움마야드 모스크를 방문하고 있다.(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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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의 철권통치가 종식되자 러시아는 반군에 쫓겨 국외로 탈출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과 그의 가족 망명을 받아들였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인도적 배려’에 의한 조치다. 옛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경력을 쌓은 푸틴 대통령의 전략적인 계산이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16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푸틴 대통령이 이번 아사드 대통령의 망명을 수용한 것은 ‘의리’를 보여줌으로써 권위주의적 국가 지도자들에게 러시아의 신뢰를 강조하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아사드 대통령의 망명 소식이 전해지자 러시아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런 결정은 국가원수의 동의 없이는 내릴 수 없다”며 푸틴 대통령이 직접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KGB 시절부터 충성스러운 인물을 철저히 보호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이는 권위주의 체제의 지도자들이 정권 붕괴 시 안전한 피난처를 보장받기 위해 러시아와 더욱 긴밀히 협력하게 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이 정변으로 인해 해외로 도피한 독재자의 망명을 허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5년 키르기스스탄의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과 2014년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에 각각 망명을 허용적이 있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 망명을 위해 러시아 특수부대가 우크라이나에서 구출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은 역대 세 번째 러시아로 망명이며, 우크라이나의 야누코비치 대통령 이후 10년 만이다. 러시아 정보기관 요원이 시리아 내 러시아군 기지를 통해 아사드 대통령의 도피를 주선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이러한 망명 전례에 따라 러시아는 위험에 처한 동맹에 피난처를 제공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국가로 인식하게끔 하는 것이다.
닛케이는 러시아는 국토가 넓고 사람을 숨기기 쉬워 구소련 시절부터 망명한 인사나 정보기관 관계자를 보호하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1963년엔 영국 비밀정보부(MI6) 고위 간부 중 한명으로 소련에 많은 기밀을 유출한 김필비를 모스크바로 탈출시킨 적이 있다. 최근엔 2013년 미국 정부의 비밀 정보를 폭로하고 도피 중이던 미국 중앙정보국(CIA) 전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의 망명을 허용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김필비는 아파트를 제공 받아 평온한 여생을 보냈으며, 스노든은 현재까지 러시아의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으며, 2022년에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은 모스크바 외곽의 고급 주택가에 호화로운 저택을 소유하고 있으며, 러시아 당국의 보호 아래 가족과 함께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가족과 측근이었던 전직 고위 관료들도 모스크바에서 푸틴 정권의 특별대우를 받으며 기업 활동 등에 종사하고 있다.
이에 아사드 대통령도 러시아에서 엄중한 경호를 받으며 실각 전처럼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 아사드 정권의 급격한 붕괴 이후 극심한 인권 침해가 드러나면서 망명을 받아들인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도 불가피하다.
이러한 악명 높은 아사드 대통령의 망명을 러시아가 인정하고 국제사회에 공개하는 것은 신흥국 독재자에 대한 러시아의 구심력을 높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상 독재 정권 지도자들 중 상당수는 도피가 필요할 때를 대비해 조세피난처에 재산을 은닉한다. 정권 유지를 위해 많은 적을 만들어온 만큼 안전한 도피처 확보에 불안감이 상당한 데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한 줄기 빛이 되는 셈이다. 중동에 주재 중인 유럽 주요국 고위 관료는 닛케이에 “동맹국이라면 망명 시 철저하게 보살펴주는 푸틴 대통령의 인의는 많은 신흥국 정상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친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의 군사적, 경제적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아사드 대통령과 같은 중요한 정보를 가진 인물을 보호하려는 계산도 깔렸다. 미국과 영국 측에 따르면 아사드 정권은 국가 차원에서 마약 거래를 확대해왔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시리아가 생산하거나 밀수하는 마약 ‘캡타곤’의 시장가치는 연간 최대 56억 달러 수준에 달한다. 또 시리아 내 러시아가 보유한 군사기지엔 러시아의 민간 군사기업 와그너 그룹의 전투원들이 드나들며 아프리카에서 불법으로 채굴한 금 등 자원에 밀수에 관여했다는 의혹도 있다.
푸틴 대통령은 망명 허가를 통해 단순히 동맹을 보호하는 것 이상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노리며, 권위주의 체제 내에서 러시아의 위상을 공고히 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다.
닛케이는 “KGB 시절 스파이들을 돌보던 푸틴 대통령은 ‘배신은 절대 용서하지 않지만, 충성스러운 동료는 철저하게 보호한다’라는 태도로 유명하다”며 “이러한 마피아와 같은 규범에 입각한 행동은 민주적인 서방에 대항하는 권위주의 진영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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