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응원봉을 든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 환호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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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갔다. 롱패딩과 양털부츠, 마스크와 핫팩으로 중무장했다. 소용없었다. 아스팔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는 뼛속까지 시리게 했다. ‘대통령(윤석열) 탄핵소추안’ 가결을 바랐다. 투개표가 빨리 끝나기 또한 바랐다. 주변을 둘러보니 달랐다. 여성이 다수인 청년들은 흔들림이 없었다. 집중력과 인내심이 놀라웠다.
탄핵 정국 속 1030세대의 ‘응원봉’이 주목받고 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다만세)로 대표되는 집회 속 K팝도 화제다.
한국 시민은 지난 2주 사이 ‘다만세’를 두 차례 겪었다. 12월 3일 내란 사태로 다시 만난 세계는, 45년 전 독재자가 지배하던 폭력의 세계였다. 윤석열은 그 세계를 부활시키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12월 14일 탄핵안 가결로 다시 만난 세계는 민주주의와 평화의 세계다.
12·3과 12·14 사이 전국 곳곳의 광장에선 수많은 이들이 무대에 올랐다. 부산 서면 집회에서 한 여성은 자신을 “온천장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소위 말하는 술집 여자”라고 소개하며 발언에 나섰다. 이 여성은 쿠팡 노동자 사망, 동덕여대 시위, 장애인 이동권, 교제폭력 등의 이슈를 거론하며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난 다음에도, 정치와 우리 주변의 소외된 시민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사실 ‘내려가라’ 이런 말 들을 각오까지 하고 올라간 건데, 손뼉 치고 환호해주니 울컥했다”(한겨레 인터뷰)고 털어놨다. 환호는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동질감과 유대감에서 비롯했을 터다.
12·14 이후는 어떨까. 한국 시민은 대통령 탄핵 ‘유경험자’다. 8년 전 박근혜 탄핵 때를 돌아본다. 탄핵 광장에선 ‘백가쟁명’ 했으나 광장이 닫히자 불평등·양극화·성차별·기후위기 같은 이슈는 뒷전으로 밀렸다. 공론장은 차기 대선을 둘러싼 정치공학적 이슈로 덮여 버렸다. 시민의 삶은 바뀌지 않았다.
<한국 정치 리부트>에서 저자 신진욱·이세영은 한국 정치를 ‘열광과 환멸의 사이클’로 설명한다.
“민주정의 빗장을 열어젖힌 건 대중운동의 에너지였지만, 민주화 이후 정치적 질서 구축을 주도한 건 정치 엘리트였다. 그 결과 정치사회 외부에는 제도 질서를 통해 흡수되지 못한 열정과 에너지가 쌓이게 되고, 임계점에 도달한 에너지가 사회정치적 모멘텀과 조우하면 대의 시스템을 우회해 분출되는 상황이 빚어졌다. 하지만 ‘열광의 시간’ 또한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통치세력이 시스템을 정비하고 외부 요구의 일부를 흡수하면 거리의 열기는 냉각된다. 이때부터는 ‘환멸의 시간’이다.”
2024년에도 열광의 시간을 마감하고 환멸의 시간을 준비할 건가. 응원봉을 흔들던 청년들은 집과 학교로, 노래방 도우미 여성은 일터로 돌아가라 할 텐가. 나머지 과제는 정치제도 속 ‘기득권’들이 알아서 잘할 테니 맡겨두라 할 텐가.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응원봉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정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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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탄핵 이전의 일상-등교하고 시험 보고 출근하고 송년회도 하는-으로 돌아가되, 탄핵 이전의 정치로 돌아가선 안 된다.
응원봉을 향한 열광을 넘어, 응원봉을 든 사람들과 그들의 마음에 주목할 때다. 광장에서 빵과 커피와 어묵을 나누던 ‘선결제’는 한때의 미담으로만 기억될 일이 아니다. 시민은 선결제로부터 공유·공존·공공선 같은 가치를 읽어냈다. 이러한 가치는 복지·조세 관련 입법을 통해 제도화할 수 있다. 탄핵안 표결을 거부하고 퇴장하던 국회의원들을 향한 분노는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국민소환제’에 담아낼 수 있다.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개헌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관성적 접근으로는 시민의 삶을 바꿀 수 없다.
일부에선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이 마무리될 때까지 사회대개혁 논의는 유보하자고 한다. 물론 탄핵소추는 끝이 아니다. 대통령의 직무정지라는 잠정 조치일 뿐이다. 그렇다고 헌재만 바라보며 손놓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물리적 광장이든, 온라인 공론장이든 다양한 시민들이 다양한 이슈를 제기할수록 민주주의는 확장되리라 믿는다.
보수든 진보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광장은 이제 닫혔다며 정치를 자신들의 전유물인 양 ‘회수’하려 할 경우 심판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밝혔듯 “수많은 일인칭들”이 독재와 폭력에 반대하며 광장에 섰다. 그 동력을 이어나가야 한다. 삶의 변화, 정치의 변화를 향해.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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