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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원·달러 환율이 급등으로 외환보유고가 줄면서 외환위기가 닥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무리하게 시장에 개입하기보다 한미 통화스왑 추진, 기준금리 인상 등을 통해 금융시장을 조기 안정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당분간 원·달러 환율은 1400원선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탄핵정국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매파 전환 및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등을 고려하면 원화가치가 오르긴 힘들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원·달러 환율은 계엄 당일 연고점인 1442원까지 폭등 후 다소 주춤했다가 대통령 탄핵안 가결 전날까지 1430원대로 재차 상승했다. 일각에선 레고랜드 사태 당시 기록했던 1445원을 넘어 1500원을 돌파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특히 혼란스러운 정국이 길어질수록 원·달러 환율이 추가 상승하고,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외환보유고 감소세가 장기화되면 대외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프랑스와 이스라엘은 모두 정치적 충격으로 인해 신용등급이 강등된 바 있다.
현재 우리나라 신용등급은 AA-(S&P: AA(안정적)·무디스: Aa2(안정적)·피치: AA-(안정적))다.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큰 중국과 일본은 두 계단 낮은 A+로,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세와 경쟁력 있는 산업을 바탕으로 재정능력 면에서 최고점을 받아왔다.
하지만 지난 2021년말 4631억달러였던 외환보유액은 2022년 4232억달러, 2023년 4201억달러, 올해 11월 말엔 4154억달러로 매년 감소했다. 계엄사태와 탄핵정국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외환보유액이 6년 만에 4000억달러 밑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은행은 계엄 사태 이후 변동성이 높아진 금융·외환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비정례 RP를 매입하는 등 유동성 공급에 집중하고 있다. 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 4일 10조8100억원에 달하는 RP를 매입한 한은은 현재까지 약 14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같은 유동성 공급이 환율·물가 상승을 자극하고, 환율 상승 장기화 시 외환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단 당장은 외환보유고를 활용해 급한 불을 꺼야 하는 건 맞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세밀한 외환·경제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뉴스웨이와의 통화에서 "일단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까지는 어떤 방식으로든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게 최우선"이라면서도 "다만 시중의 통화량을 늘리는 한은의 RP 매입은 결국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고, 외환보유액이 빠르게 없어지거나 환율이 1500원 선을 넘어설 경우 외환위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 같은 시장의 우려에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 이 총재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유동성이 풀려 환율이 올라갔다든지 물가가 올라갔다는 것은 지금 수준의 유동성 정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며 "우리나라는 외환시장에서 차입을 하거나 작용을 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고, 지금까지 RP를 통한 유동성 공급 규모는 14조원 정도이기 때문에 평상시 통화정책 수준에 비해 더 풀린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이 총재의 발언이 무책임하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은의 RP 매입 규모는 우리나라 GDP의 0.5%에 달할 만큼 적지 않고, 유동성 공급과 환율 상승은 물가를 자극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은행의 외환시장에 자꾸 개입하다보면 우리나라가 환율관찰국에서 환율조작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환율조작국이 되면 우리나라의 기업투자가 상당히 제한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창용 한은 총재는 환율 상승과 유동성 공급이 전혀 관계없다고 얘기하는데, 당장은 아니겠지만 시차를 두고 환율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지금 당장 환율이 올라간 것에 대해 본인 책임이 아니라며 회피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미 간 기준금리차 역전현상이 확대되고 장기간 유지됐던 게 환율 상승의 근본적인 이유"라며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은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한미 통화스왑 체결과 12월 임시 금융통화위원회 개최를 통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금융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김상봉 교수는 "계엄사태 당시에는 임시방편으로 유동성을 공급했지만 장기적으론 경제의 펀더멘털을 회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라며 "지난 2018년부터 6년째 장기 저성장에 접어든 상황에서 단순히 민생에 돈을 풀 게 아니라 민간 기술개발(R&D) 분야에 투자하고 육성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박경보 기자 p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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