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전기차 1위 ‘사쿠라’ 보유한 닛산
경영난 속 혼다와 통합 가속화
토요타 제외, 日2~4위 브랜드 합병으로
내연기관+HEV+EV 까지 라인업 갖춰
‘완성차업계’ 지각변동, 꾸준히 감지
지난 3월 일본 도쿄에서 닛산 자동차 최고경영자(CEO) 우치다 마코토(왼쪽)와 혼다 자동차 CEO 미베 도시히로가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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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성우 기자] ‘리프’와 ‘사쿠라’(닛산의 차명, 의미는 벚꽃) 등 전기차 브랜드로 알려진 일본 3위 완성차 업체 닛산이 경쟁사인 2위 혼다와 경영통합을 위한 협의에 나섰다.
판매량 부진과 신용등급 하락으로 ‘위기’에 놓인 닛산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선택에 들어간 것이다. 닛산이 최대주주로 있는 업계 4위 미쓰비시자동차가 여기에 합류하게 될 경우, 양사의 협업은 1위 토요타자동차를 제외한 2~4위 업체간 협력이란 결과를 낳게 된다. 일각에서는 크라이슬러와 PSA의 합병으로 탄생한 ‘스텔란티스그룹’의 사례까지 거론되고 있다.
우리 완성차업계에도 적잖은 파장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우선 지난해 글로벌 3위로 올라선 현대자동차그룹(744만대)보다 3사의 판매량(850만대)이 많다는 점에서 순위변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3사가 통합으로 시너지를 내게 될 경우, 북미와 유럽 등 주요시장·인도와 동남아 등 신흥국 시장 모두에서 보폭을 확장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에도 큰 경쟁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18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완성차업체인 혼다와 닛산자동차가 경영통합을 위한 협의에 돌입했다고 보도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양사는 지주사 체계로 편입돼 각 브랜드를 독립 운영하는 체제로 합병하는 방안을 두고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양사는 이른 시일 내에 양해각서를 체결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완성차업계 2위인 혼다(276만대), 3위인 닛산(276만대, 르노포함 500만대)과 닛산이 최대주주로 있는 4위 미쓰비시(81만대)의 통합이 사실상 가속화된 것이다.
인피니티와 멕시마의 ‘닛산’이 왜?
닛산은 프리미엄 자동차 ‘인피니티’나 대형 세단 ‘멕시마’로 잘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량 부진을 겪어 왔다. 닛산의 ‘사쿠라’를 포함한 전동화 모델은 일본 시장 1위에 오르는 등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일본은 전기차 시장 규모가 한정적이었다. 게다가 닛산은 시장 규모가 큰 북미와 중국 시장에서 고배를 마셔 왔다.
일찌감치 위기를 감지하고 2019년 우치다 마코토 현 닛산 CEO와 스티븐 마 CFO 체제로 변화를 시도했지만 변화를 거스르지 못했다. 전기차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수정하고 리프와 사쿠라 등 전동화 모델을 성공시키며 일본 시장을 중심으로 큰 주목을 받았지만,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사이 중간고리 역할을 담당할 HEV 라인업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것이 화근이 됐다. 닛산이 보유한 HEV 시스템은 경쟁사인 현대차나 토요타, 혼다 대비 연비 상승수준이 떨어졌고, 다양한 HEV 모델이 각축장을 벌이는 북미에서는 제대로 된 사업을 펴기도 어려웠다.
일본 자동차 제조사 닛산의 도쿄 쇼룸[로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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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현지 모델들의 성장에 눈물을 흘렸다. 판매량 기준 세계1위의 전기차 업체로 발돋움한 비야디(BYD)를 시작으로, 다양한 중국 완성차브랜드가 글로벌 수준으로 성장했다. 자연스레 닛산의 설자리는 줄어갔다. 한국시장에서도 2019년 시작된 ‘노노 재팬’(일본상품 불매운동)의 영향으로 2020년 철수를 결정했다.
그럼에도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매출이 떨어졌고, 주가도 부진한 상황이 이어졌다. ‘튼튼한 내구성’으로 사랑받던 닛산 푸가와 시마, 맥시마 등 내연기관 세단은 줄줄이 단종 수순을 겪었다. 현재 닛산의 승용차 포트폴리오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경형·소형(컴팩트카)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리프, 사쿠라) 위주로 짜져 있다.
활로가 시급했다. 그리고 닛산은 이에 혼다와 손을 잡는 결정을 내렸다.
양사간 협업의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 2020년에는 일본정부가 닛산과 혼다의 합병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파이낸셜타임스(FT)를 통해 보도됐다. 세계 자동차 시장이 자율주행 전기자동차(EV) 중심으로 바뀌면서 일본 자동차업체들의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고 판단한 일본 정부가 결단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양측은 모두 당시 보도에는 완강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꾸준히 부진이 이어져 오면서 올해초부터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왔다. 닛산과 혼다는 지난 3월 포괄적협업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구체적으로는 전기차와 차량 소프트웨어(SW) 분야에서 협업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하지만 그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양측이 협업할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또 7월에는 닛산이 최대주주인 미쓰비시도 동맹에 합류했다. 3사의 통합을 위한 판이 갖춰지게 된 셈이다.
한국닛산이 앞서 한국에서 판매했던 전기차 리프(LEAF). [한국닛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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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으로 인한 우리 업체에 영향은?
현대차의 인도 상장과 인도네시아 공장건설 등, 신흥국 시장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 입장에서는 3사의 시너지가 달가운 상황은 아니다. 북미에서도 경쟁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혼다가 닛산의 전동화 기술력을 전수받는다는 점이 껄끄럽다.
다만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우리 완성차업계에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스텔란티스그룹의 출범 당시 상황이 현재와 유사하다는 점에서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7월에 크라이슬러와 PSA가 합병하며 탄생한 스텔란티스는 합병전 글로벌 판매 800만대에 달했지만, 합병 후 2023년 글로벌 판매량은 610백만대로 23% 감소했다. 미국 시장에서의 점유율 역시 2019년 13%에서 올해 현재 8% 수준으로 급감했다.
합병 과정에서 양사가 구조조정과 내실다지기를 반복하면서, 사업부 축소와 마케팅 부진을 겪었고 다른 회사에 뒤쳐진 것이다. 그기간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서며 시장점유율이 8%에서 올해 누계기준 11%로 성장했다. 혼다와 닛산의 합병도 비슷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현대자동차의 미국 사옥. [헤럴드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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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닛산 모두 장기적 시너지 효과는 뚜렷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혼다와 닛산의 통합사는 강력한 경쟁력을 지닌 회사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우선 닛산입장에서는 혼다와의 협업은 북미에서 HEV 경쟁력 강화와 영업망 확보라는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혼다는 세계적인 ‘엔진 기술력’을 자랑하는 회사로, 높은 엔진내구성과 연비로 호응을 받아온 브랜드다. 엔진 기술력을 바탕으로 HEV 시장에서도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여기에 오랜시간 미국시장에서 활동하며 CR-V, 어코드를 ‘스테디셀러’로 각인시킨 영업력도 탁월한 수준이다.
혼다가 아큐라(ACURA, 섬세함이란 뜻)라는 프리미엄 라인업을 갖추고 있는 점을 감안했을 때, 닛산이 한동안 포기했던 고급형 세단 시장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사업에서 철수하며 부진했던 닛산과는 다르게 혼다는 유럽과 북미 등지에서 차량을 판매해온 영업망을 갖추고 있다”면서 “혼다와의 맞손으로 닛산의 차량 경쟁력이 크게 상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혼다는 주로 이륜차 부문이 실적을 견인하면서,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차를 갖춘 포트폴리오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창립시절부터 기술의 자급자족 원칙을 이어오면서, 다른 완성차와의 협업은 하지 않는 형태였다.
하지만 이번 닛산과의 합병으로 경영에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보인다. 혼다가 보유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기술은 세계 1위의 하이브리드차 기업인 토요타에 필적하는 수준으로 여겨진다. 현재까지 어코드와 CR-V, 캠리 등 자동차에 한정됐던 하이브리드 기술은 닛산이 보유한 다양한 차량들에 적용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닛산이 보유한 비교적 우수한 전기차 기술력도 혼다 차량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된다.
닛산이 갖춘 인도와 아세안 신흥시장 사업 노하우도 혼다에게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혼다는 태국 아유타야와 쁘라찐부리주에 공장을 두고 있었지만, 판매량 감소 등의 영향으로 지난 7월 태국 아유타야주 공장을 정리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닛산·미쓰비시가 가진 소형차 경쟁력과 영업능력으로 현지 시장에 재도전이 가능하다.
닛산도 마찬가지로 태국에서는 최근 공장 규모를 축소했지만, 그외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는 입지를 공고히하고 있다. 인도에서 닛산은 오랜기간 르노와 함께 인도시장을 공략하며 대리점 등 영업망과 생산시설을 갖춰왔다. 미쓰비시는 인도네시아에 투자하며, 동남아 현지 브랜드와 합작으로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미쓰비시는 연간 80만대 판매 수준의 판매량을 가지고 있지만, 혼다·닛산과의 협업으로 기존에 개발된 전기차, 소프트웨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지난 4일 태국 라용에 위치한 비야디(BYD)의 동남아 최초 전기차(EV) 공장 모습. [로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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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변화의 신호탄 될까?
한편 이번 통합이 성사될 경우 완성차업계에도 큰 지각변동으로 이어질 것으로 점쳐진다.
혼다와 닛산, 미쓰비시 등 3사의 연간 통합 판매량이 850만대를 넘어서게 돼 현재 3위인 현대차그룹에 앞선다. 또한 시너지 효과를 누릴 경우, 지난해 1120만대를 판매한 토요타자동차, 924만대를 판매한 독일의 폭스바겐도 넘볼 수 있는 수준까지 치고 올라온다.
3사의 협업이 다른 회사(현대차-GM, 현대차-토요타) 간의 빠른 기술협력을 낳을 수도 있다.
완성차 업계는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들과 미국 전기차 선두주자인 테슬라와의 경쟁에서 기존 자동차업체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인수합병(M&A)과 기술협업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기술력을 앞세운 미국 테슬라, 리비안이나 물량공세를 중심으로 한 중국 비야디 등 신흥업체들이 전장 등 신기술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해 기존 업체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 후발업체로 시작해 SDV(소프트웨어중심차량)나, 로보틱스, UAV 등 모빌리티 분야 전반으로 보폭을 확장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 기존 프리미엄급 차량에서 시장 규모를 넓혀가고 있는 포르쉐나 로터스, 마세라티 등 기존 브랜드들의 변화도 무섭다.
한 국산차 업계 관계자는 “소프트웨어나 전장사업에 있어서는 제조업 기반인 기존 업체들의 수준이 신흥업체들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새플레이어의 등장으로 점차 격화되고 있는 경쟁 속에서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한 업체간 통합은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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