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동명 영화 연극으로 각색
눈물 등 과감한 감정표현 눈길
담백한 매력의 원작과 차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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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이 책은 저를 위한 겁니다.”
첫 장에 ‘HGW XX/7에게’가 쓰여 있는 빨간 표지의 책을 받아 품에 안는 순간 게르트 비즐러 역을 맡은 이동휘 배우는 펑펑 눈물을 쏟는다. 어린 아이처럼. 그간 냉철한 판단을 내리거나 덤덤한 반응을 보이던 비즐러가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마구 내보이는 분출하는 순간이다.
최근 LG 아트센터 서울에서 프로젝트 그룹 일다가 제작한 연극 ‘타인의 삶’을 관람하면서 원작 영화와 가장 큰 차이점으로 느낀 것은 과감한 감정 표현과 설명이었다. 큰 줄기의 이야기는 분단 시대의 동독에서 벌어진 도청과 감시와 이 과정에서의 휴머니즘을 다루고 있다. 2007년과 2008년 각각 미국과 영국에서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영화 ‘타인의 삶’의 백미는 한 사람이 선한 의지로 누군가를 보호하고 자신의 남은 인생을 희생했음에도 모든 감정 표현이 생략된 채 담백한 미소 하나로 그간의 수많은 감정을 갈음하는 데 있다. 하지만 손상규 배우는 이번에 연극 ‘타인의 삶’의 초연 연출을 맡으며 과감히 감정을 투입했다. 시종일관 차가운 눈빛과 딱딱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대사를 내뱉던 비즐러가 극적인 변화를 일으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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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에서 궁금했던 부분은 동독 체제에서 감시 체제 밖에서 믿어 왔던 게오르그 드라이만이 독일 통일 후 우연히 브루노 햄프로부터 사실은 감시체제 속에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집 안의 전화선을 뜯어내자 사방의 벽에 촘촘히 있던 도청 장치들이 속속들이 드러나는 압도적 장면의 연출법이다. 연극에서 이는 끝 없는 줄을 내리는 행위로 표현됐다. 자신을 지켜준 코드명 ‘HGW XX/7’의 비밀 요원이 비즐러라는 것을 알게 된 뒤 쉽게 그를 만날 수 없는 감정 또한 내레이션으로 설명한다.
연극 시간은 인터미션 없이 110분으로, 기존 영화(137분)의 전개를 대부분 그대로 따랐다. 이렇다 보니 점차 비즐러가 도청을 통해서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인 크리스타 질란트를 점차 공감하고 아끼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초반의 전개를 넘어 크리스타로부터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듣고 비즐러가 내적인 동요를 느낄 때부터 연극에 감정과 색채가 더해지면서 관객들이 더욱 가까이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공연은 내년 1월 19일까지.
정혜진 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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