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학한림원 반도체특위 연구결과 발표
“한국 메모리 기술력 우위 사라져”
김기남 회장, 골든타임 “시간 얼마 안 남아” 우려
정부 20조 투자해 ‘한국판 TSMC’ 구축 제안
1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국공학한림원 반도체특별위원회(이하 반도체특위) 연구결과 발표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한국공학한림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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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민지·김현일 기자] “지금 한국 반도체는 역사상 최대 위기 입니다. 이전에 있던 메모리 초격차 기술력도, 선제적 투자 경쟁력도 희미해졌습니다.”(이혁재 서울대 교수)
“기업, 학계, 정부 모두 절박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김기남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이 ‘한국 반도체의 최대 위기’ 상황임을 강조하며 정부의 지원을 촉구했다. 전세계적으로 기술 평준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투자 경쟁력 상실·규제 과잉·인재유출 등 ‘3중고’에 처해있다는 지적이다. 위기 회복을 위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깊은 우려도 나온다.
한국공학한림원 반도체특별위원회(이하 반도체특위)는 1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연구결과 발표회를 열고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역사상 최대 위기’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이날 연구결과 발표는 지난 10개월에 걸쳐 석학과 산업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수렴한 의견들로 채워졌다. 전세계 반도체 산업이 ‘국가 대항전’으로 접어든 상황에서, 한국은 기술 및 투자 경쟁력 약화, 인재 유출, 불필요한 규제 등에 발목이 잡혔다는 것이다.
김기남 공학한림원 회장은 “현재 엄중한 정치적 상황이지만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인 반도체를 지켜내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며 “공학한림원에서 1년간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정리한 K-반도체 위기극복 방안에 국민들이 공감해 주시고 지원해 주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반도체 위기 회복을 위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도 강조했다.
김기남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이 1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반도체특별위원회(이하 반도체특위) 연구결과 발표회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한국공학한림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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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가 느끼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며 “반도체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뛰고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간담회 후 헤럴드경제와 만나서도 “보통 (시장 턴어라운드 텀이) 1년 반~2년인데 그 안에는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반도체특위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혁재 서울대 교수는 이날 기조연설을 통해 “반도체는 국가 안보이자 국가 전략 자산이 됐다”며 “각국 정부가 개입해 지원하면서 치열한 기술 경쟁체제에 돌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K-반도체가 직면한 위기의 첫 번째 징조로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초격차 약화를 지적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가 그간 우위를 보이던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이 평준화되면서 대한민국의 초격차 기술력이 희석됐다”며 “D램 미세화 기술이 한계점에 봉착했고, 낸드도 단수 차이가 거의 없어졌다”고 꼬집었다.
선도적 투자 경쟁력도 상실됐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모든 기업들이 신규 투자를 하는 ‘투자전쟁’ 시대가 시작되면서 그동안 신규 투자로 경쟁력을 유지하던 대한민국의 장점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적기에 투자하지 못하면 투자에 대한 이익률이 낮아지고 투자의 악순환 고리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특히, 이날 간담회에서는 주 52시간 근로시간 규제로 생산성이 떨어진 점도 K-반도체 위기의 징조로 꼽혔다.
이 교수는 “대한민국만의 비밀병기인 부지런함이 없어지고 있다”며 “30분만 일하면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퇴근을 해야 하니까 다음날 다시 일을 처음부터 하게 되고, 그러니 기술 개발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특위 위원인 안현 SK하이닉스 사장도 “주 52시간에 대해 엔지니어의 관점에서 말하면, TSMC는 엔지니어가 늦게까지 남아서 일하면 특별수당을 주고 장려한다고 하더라”라며 “개발을 하다보면 가속이 붙어서 관성으로 갈 때가 있는데 주 52시간제는 개발이라는 특별한 활동을 할 때 부정적인 습관이나 관행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진 주제 발표에서는 대안으로 ▷제조 경쟁력 제고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강화 ▷새로운 시장 창출을 위한 연구개발 추진 ▷인재유입 위한 정책 등 4가지가 제시됐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제조업을 지키려면 제조시설 구축에 적시 투자가 필요하다”며 “메모리 기술 및 첨단 패키징 기술 등에 대한 선제적 기술개발과 시설의 적시 투자를 위한 300조원 재정지원이 필요하고, 현재 조성 중인 용인 클러스터가 원활하게 추진되도록 용수 및 전기가 적시에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수도권 규제 완화 및 환경규제·인허가 문제 해소도 필요하다”며 “반도체는 속도 경쟁인 만큼 중복되고 불필요한 규제를 정리하고 주 52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권석준 성균관대학교 교수가 1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반도체특별위원회(이하 반도체특위) 연구결과 발표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한국공학한림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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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는 삼성전자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산업의 한계를 지적하며 정부 주도로 일명 ‘KSMC’를 구축해 시스템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공기업으로 시작해 민간기업으로 전환된 대만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처럼 한국판 ‘KSMC’를 만들자는 의미다.
권 교수는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이 필요로 하는 미들텍-레거시(성숙) 공정을 제공하는 파운드리 공장을 구축해 운영하자”며 “삼성전자 선단공장과 겹치지 않는 10~20나노 사이, 20~45나노 사이를 타깃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산 라인으로는 규모가 영세하고 자원 및 인력 규모가 작은 국내 3대 나노팹 라인을 정부 투자로 인수하거나 리스하자는 주장이다.
이어 “이를 위해 20조원의 재정을 지원하면 20년 뒤 300조원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동순 세종대 교수는 새로운 시장기회를 잡기 위해 “수요기업과 대기업·팹리스가 참여한 상용 타깃형 대형 R&D 지원이 필요하다”며 “전략물자 확보를 위한 기술 격차가 큰 첨단기술 확보형 R&D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백광현 중앙대 교수는 인재 유입을 위해 사학연금과 같은 반도체 특별 연금법을 제정하고 중·고등학교 반도체 전문 동아리 활성화 지원 및 외국인 대상 대학 학과 개설을 제안했다.
앞서 한국공학한림원은 국내 반도체 산업의 정책 분석과 선도전략 연구를 위해 올 2월 반도체특위를 발족시켰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과 이혁재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공동위원장을 맡았고, ▷권석준 성균관대학교 고분자공학부 교수 ▷김동순 세종대학교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 ▷박재홍 보스반도체 대표 ▷백광현 중앙대학교 전자전기공학부 학장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 ▷안 현 SK하이닉스 개발총괄 사장 ▷이현덕 원익 부회장 ▷조명현 세미파이브 대표가 위원으로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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