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확전해 레임덕 맞은 존슨 美 대통령의 결정적 실수
역사적 리더 선택의 순간 꼽아… 지금 필요한 리더십 본질 탐구
“공공의 이익 위해 싸우는 정신, 리더가 지닌 진정한 힘의 원천”
◇다시, 리더란 무엇인가/모식 템킨 지음·왕수민 옮김/456쪽·2만2000원·어크로스
1968년 2월 미국의 베트남 뗏(Tet) 공세 직후 회의에서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린든 존슨 대통령(왼쪽)과 로버트 맥너마라 국방장관. 어크로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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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대통령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시종일관 해주고 있었다. 존슨은 냉전에서 매파이기도 했지만 베트남에서 그쯤 물러나 손실을 줄이면 자신이 나약하고 남자답지 못한 사람으로 비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제36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린든 존슨은 미국 정계 및 민주당 내에서 영민한 백전노장으로 통하는 인물이었다.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모든 국민이 잘사는 선진국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야심 찬 대통령의 첫발을 뗀 그였다.
하지만 그는 미국을 ‘베트남전의 수렁으로 끌어들였다’는 박한 평가를 받는다. 저자는 “로버트 맥너마라 국방장관은 (확전을 원하는) 존슨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데이터가 틀렸음을 깨닫고도 정권을 유지하고자 전황이 순조롭다는 거짓 보고를 일삼았다”고 지적한다. 존슨 대통령은 이를 믿고 추가 징병 및 파병을 단행했으나 전황은 처참했다. 점차 악화한 여론으로 국내 개혁도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권력을 위한 권력’을 좇았던 두 리더의 결정으로 미군 5만8000명, 베트남인 3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존슨은 민심을 잃고 재선 도전도 하지 않았다. 레임덕에 시달리다 쓸쓸한 말로를 맞았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역사학과 리더십을 가르치는 저자가 역사 속 리더들의 모습을 돌아보며 현 시대 진정한 리더의 조건에 대해 묻는다. 세계 최고의 공공정책대학원으로 꼽히는 케네디스쿨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 등을 배출한 명문. 이곳에서 10년 넘게 명강의로 꼽힌 저자의 ‘역사 속 리더들과 리더십’ 강연을 책으로 묶었다. 수강생들은 주로 세계 각지에서 공직에 뜻을 품고 찾아온 이들이다.
저자는 “리더가 역사를 만드는가, 아니면 역사가 리더를 만드는가”라고 되물으며 강의가 일종의 ‘사고 실험’이었다고 회고한다. 신간은 저자와 수강생들이 여러 역사적 맥락에서 당대 리더들의 삶, 결정, 비전 등을 함께 공유하고 고민했던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 강의에서 곁들여졌던 영화, 사진, 시청각 자료 등 예시를 풍부하게 더해 내용을 쉽게 풀어낸다.
1945년 2월 얄타 회담에서 연합국의 독일 분할 점령을 결정한 윈스턴 처칠,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오시프 스탈린(왼쪽부터). 어크로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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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리더들도 약점을 지닌 인간이라는 것을 특히 강조한다. 일본에 1945년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한 미국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일념 때문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이는 4년 전 황당무계한 진주만 공격 계획을 늘어놓던 일본의 지도부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고 지적한다. 대중의 요구에 부응해 ‘뉴딜 정책’을 내놓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편법을 쓰며 정책을 밀어붙였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엔 ‘국가 안전’을 명목으로 일본인들을 법적 근거 없이 강제 구금하기도 했다.
1940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시민들이 나치에 패퇴한 자국군을 보며 눈물짓고 있다. 저자는 과거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 다양한 리더들을 조명하며, 공공선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리더상을 제시하고 있다. 어크로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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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정치 지도자나 최고 권력자들만을 리더로 규정하진 않는다. 도미니카공화국 독재자의 폭정에 결연히 반기를 든 미라발 자매. 미국 내 여성 참정권을 위해 힘쓴 시민 운동가,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과 맬컴 엑스의 사례도 언급된다. 또한 역사 속 위대한 투사가 아니더라도 공공선을 생각하는 개개인이라면 모두 리더가 될 수 있다고도 강조한다.
진정한 리더십의 부재로 국가적 위기를 토로하는 이들이 많다. 저자는 “권력과 공공의 이익은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다. 공공의 이익을 걸고 싸움을 벌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리더가 지닌 가장 강력한 권한”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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