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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망자의 마지막 대변인"…시신 4천여구 부검한 법의학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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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 법의학교실 이호 교수, 신간에서 '잘 비우는 삶' 역설

세월호에서 인양된 299구의 시신, 가장 고통스런 기억으로

연합뉴스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주=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지난 30여년간 시신 4천여구를 부검하며 죽음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이호(58·전북대학교 법의학교실) 교수가 생각하는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교수는 며칠 전 발행한 신간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웅진지식하우스)'에서 "우리는 죽음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는 "무심코 흘려보내는 일상이 소중한 이유, 당연한 듯 존재하는 내 곁의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삶이 아니라 죽음에서 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는 "사람은 두 번 죽는다. 첫 번째는 생물학적으로 숨이 멎었을 때, 두 번째는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 죽었을 때"라며 "즉,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때, 그 사람의 존재는 완전히 잊히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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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교수
[연합뉴스 자료사진]


책에는 이 교수가 의대 본과 4학년 때 법의학 전공 결심에 병리학 교수로부터 '미친 X' 소리를 들었던 내용부터 법의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철규 열사 사건(이 열사는 1989년 5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 중 광주 제4수원지 삼거리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해 도망친 지 일주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됨.)과 파묘로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낸 사례 등이 담겨 있다.

그는 매일 죽음과 마주하며 개인의 죽음뿐 아니라 사회가 죽음에 미치는 영향, 죽음의 인식, 존엄사 등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를 이야기한다.

이 교수는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라며 "삶의 맨 끝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동전의 뒷면처럼 언제든지 순간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존재"라고 규정했다.

생과 사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이다.

의학도들에게 유명한 라틴어 격언인 '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를 소개한 이 교수는 "죽은 사람은 자기 몸을 의사에게 보여줄 기회가 단 한 번뿐이기에 더욱 절실하다"면서 "사람의 마지막 순간, 침상에 누운 그들을 내려다봐 줄 의사가 되어주는 것, 법정에서 그들을 대신해 억울함을 밝혀줄 증언자가 되는 것이 법의학자의 역할"이라고 소명 의식을 나타냈다.

법의학자는 의사이자 고인의 대변자이며, 철저한 과학적 증거로 사실만을 말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는 "죽은 사람도, 남겨진 사람도 힘든 법"이라며 "그 모든 질문에 여전히 다 답할 수 없지만 이곳을 떠나는 나그네의 마지막 길동무가 되어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떠난 이도 남겨진 이도 조금은 덜 외롭게"라고 역할론을 설명했다.

그의 가장 큰 트라우마는 무엇일까?

그는 몸 어디에도 아무런 손상이 없었던 시신들, 세월호에서 인양한 299구의 시신이라고 회고했다.

이 교수는 "우리가 감히 유가족의 마음이 되어볼 수 없고, 황망하게 떠난 가족이 얼마나 그리울지,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데 그 고통이 얼마나 뜨거울지 알 수 없다"며 "아주 간단한 일,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것.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가장 마지막 사람이 되어주자"고 제안했다.

아울러 "잘 사는 웰빙도, 잘 죽는 웰다잉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더해 '웰빈(well-貧·잘 비우는 삶)'을 이야기하고 싶다"며 "이 세상을 잠시 살아가는 동안 빌려 쓰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살자. 삶은 당연하지 않고, 이 순간 살아 숨 쉬는 모든 당신이 기적"이라고 강조했다.

sollens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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