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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헤럴드광장] 올해의 어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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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조현용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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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이 되면 올해를 규정하는 어휘는 무얼까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면 유행어가 되었을 것이고, 새로 등장한 말이면 신어가 되었을 겁니다. 한 해를 대표하는 말 중에는 충격적인 어휘가 있을 수도 있고, 듣기만 하여도 기분 좋은 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올해의 어휘는 어떤 게 있을까요?

올해의 유행어 중에서 널리 퍼진 말은 ‘럭키비키’라는 말입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럭키비키’가 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이제는 유행어도 전 세대를 아우르지 못합니다. 예전 같으면 어떤 말이 유행하면 전 국민이 알고 사용하였지만 이제는 특정세대만의 유행어가 되기도 합니다.

‘럭키비키’라는 말과 함께 유행한 말은 ‘원영적 사고’라는 말입니다. 이 말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이 단어들은 아이돌 그룹 아이브의 장원영의 ‘럭키비키’라는 말과 그 초긍정적 사고 방식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안 좋아 보이는 일도 달리 보면 매우 좋은 일이라는 초긍정적 사고를 담고 있습니다. 먹고 싶은 빵이 다 팔려서 안 좋아 보이는 상황이지만, 새로 구운 빵을 먹게 되어 행운이라는 사고의 전환입니다.

이 말을 한 장원영의 영어이름이 ‘비키’여서 럭키비키라고 한다고 하네요. 그리고 장원영식 사고를 완영적 사고라고 합니다. 이 말이 유행하면서 힘들고, 외롭고, 지친 젊은이들이 힘을 얻었다고 하나 놀랍고 기쁜 일입니다. 끊임없이 다가오는 괴로운 일 속에서 이 일이 나쁜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긍적적 사고가 모든 연령대로 퍼지기 바랍니다. ‘와 좋다!’라는 감탄이 절로 나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리 살기가 쉽지 않은 올 한 해입니다. 마지막 달까지 슬픔, 두려움, 분노 등의 감정이 밀어닥칩니다.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 유행어가 된 지 오래고, ‘정치가 엉망’이라는 말이 유행어인 셈입니다. ‘나라가 개판’이라는 넋두리도 그야말로 나이 든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유행어입니다. 이런 유행어는 사라지기 바랍니다.

올해 유한한 말 중에 ‘정상화’라는 단어가 있다고 합니다. 제가 인용으로 표현한 것은 저도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정상화’라는 말은 우리가 아는 뜻과는 정반대로 쓰입니다. 오히려 정상에서 거꾸로 가는 것을 비꼴 때 쓰는 말입니다. 원래 게임 관련하여 시작된 말인데 널리 퍼져서 비정상을 정상처럼 이야기할 때 쓰는 말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의도를 모르는 사람은 정상화라는 말을 들으면 좋은 말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이것도 큰 문제입니다. 유행어인데 소통의 벽이 되어버렸습니다.

한편 정상화라는 말을 유행어의 의미가 아니라 원래의 이름대로 사용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주로 정치에서 많이 사용하는데 이것도 문제입니다. 정상이라는 말의 의미를 자신이 유리한 대로, 자기 고집대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정상인지 모르겠습니다. 정상이 아닌 사람이 정상을 이야기하고, 공정하지 않은 자가 공정을 이야기합니다. 상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상식을 이야기합니다. 종교적이지 않은 이가 종교를 이야기하고, 교육적이지 않은 현장에서 교육을 이야기합니다. 저마다 아집과 교만이 가득하니 정상이 아닙니다.

문득 이렇게 쓰고 보니 아집, 교만, 분노의 세상이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정상화를 비꼬는 정상화가 유행이 되었을 수 있습니다. 세상이 정상화되기 바랍니다. 제가 지금 쓴 정상화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럭키비키의 세상에서 원영적 사고를 하며 살면 좋겠네요. 서로 비꼬지 말고.

조현용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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