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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특집 다큐] 윤석열의 내란-계엄을 막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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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국회 담을 넘은 사람은 국회의원들만이 아니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단 두시간 반만에 계엄해제를 이뤄낸 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지난 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의원, 보좌진, 국회 직원,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이 국회 담을 넘고, 무장한 계엄군을 맨몸으로 막아내며 불법 비상계엄을 합법적으로 해제했다.

불법계엄 해제 요구 안건을 의결하는 본회의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과 의장뿐만 아니라 각각의 기능을 담당하는 필수 운영 요원도 있어야 한다. 본회의장 서버에 전원을 켜고 의원들의 전자투표 단말기에 안건을 등록하는 안건 표결 시스템을 작동시켜야 한다. 또 본회의를 촬영해 생방송으로 송출하고, 본회의 개의부터 산회 순간까지 나오는 발언 하나하나를 회의록에 빠짐없이 남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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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11시 5분, 국회 정문 앞을 막아선 경찰과 정문을 넘고 있는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모습. (촬영 : 박영선 국회의장실 공보비서관)
시민 도움으로 담 넘은 IT업체 직원, 본회의 시스템 전원 켰다
이광복 대신정보통신 이사는 국회 본회의장의 전자 시스템을 유지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이사는 계엄 소식을 딸에게 처음 들었다. 이후 국회 직원의 전화를 받고 직원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경기도 안양에서 밤 11시 2분 택시를 잡아 타고 11시 40분쯤 국회에 도착했다. 그러나 경찰들이 정문을 막고 있었다. 이 이사와 직원들은 정문과 다른 입구를 오가며 국회에 들어가지 못한 채 20분가량을 흘려보내야 했다. 그러다 담을 넘기로 결심했다.

이 이사가 담을 넘을 수 있었던 데는 한 시민의 도움이 컸다. 이 이사는 “출입증을 찍는 쪽문 옆 담에 바리케이가 있었다. 바리케이드를 발판 삼아 담을 넘으려 하니 경찰이 제지했다. 그런데 옆에 머리가 희끗한 시민 한 분이 눈치를 줬다. ‘자신이 경찰을 잡을 테니 올라가’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그때 확 올라가니 시민이 경찰을 붙잡아줘서 넘어가는 건 쉽게 넘어갔다. 안에서도 경찰한테 붙잡혔지만 항의하니까 풀어줬다. 그다음부터 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국회 본관에 도착한 이 이사는 먼저 본회의장 서버 전원을 올렸다. 그 사이 날이 바뀌어 12월 4일 오전 16분쯤이었다. 본회의장의 전광판, 300여 대의 단말기, 국회의장석의 PC까지 모든 전자 장비에 전원을 켜는 데 35분가량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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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복 이사는 국회 본회의장 전자 시스템을 유지 보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전광판 설치 기억 되살려 전 국민이 계엄 해제 순간 볼 수 있게 한 직원
김영해 국회사무처 디지털정책담당관실 주무관은 이 이사와 함께 본회의장 3층 영상조정실에서 전자투표 시스템을 운용했다. 평소같았으면 스무 명가량의 직원들이 나와 진행했을 일을 단 세 명이 해야 했다. 다른 직원들은 경찰과 계엄군에 가로막혀 국회 안으로 들어오지 못 했다.

본회의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시스템이 가동 중이었다. 김 주무관은 시스템 운영하는 일을 담당하지 않기 때문에 본회의장 작동 방식에 대해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 전광판은 켜지지 않은 상태였다. 마침 지난 10월 전광판 정비 업무를 담당했기 때문에 작동법은 알고 있었다. 김 주무관은 “사실 처음에는 투표가 급하니까 전광판이 안 돼도 된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방송을 통해 국민이 봤을 때 가장 (직관적으로) 볼 수 있는 거는 전광판 밖에 없다. 그래서 전광판이 무조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 준비를 최대한 했다”고 말했다.

김 주무관과 이 이사는 3평 남짓 공간에 나란히 앉아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라는 안건을 입력했다. 의사과에서 안건 문서를 전달한 시각은 4일 오전 0시45분쯤이었다. 종이로 전달받은 안건명을 손으로 직접 쳐서 등록했다. 안건은 세 군데에 등록해야 한다. 이 이사는 각 의원들의 자리에 놓인 의원 단말기에, 의정관리팀 소속 디지털정책과장이 투표 관리 프로그램(보트 마스터)에 안건을 등록했고, 전광판에는 김 주무관이 안건을 올렸다. 그때가 0시58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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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해 주무관은 담당 업무가 아니었음에도 두달 전 본회의장 전광판을 교체했던 경험으로 4일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투표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국회의장 긴급 담화와 ‘비상계엄 해제’ 본회의를 생방송으로 내보낸 국회방송 직원
국회방송을 제작하는 황육익 뉴미디어영상과 계장은 그날 밤 사무실에서 야근 중이었다. 사무실 모니터에 긴급 속보가 떴다. 처음엔 믿어지지 않았지만 실제 상황이라는 걸 깨닫고 신속하게 대응 준비를 했다. 국회와 가장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팀원들을 먼저 소집했고, 이후 전 팀원에게 출근하라고 연락했다.

황 계장은 국회 안에 있었지만 직원들은 담을 넘어 들어와야 했다. 황 계장은 “직원들이 다급하게 담을 넘다가 많이 다쳤다. 허벅지에 멍이 들거나 밀려 넘어졌다”고 했다.

황 계장은 먼저 도착한 세 팀에 국회 정문, 본관 입구, 본관 내 국회의장실을 촬영할 것을 지시했다. 우원식 의장은 이미 도착한 상태였고 긴급 담화를 준비중이었다. 라이브로 송출할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담당 직원이 경찰에 가로막혀 들어오지 못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의장실에서는 자체 유튜브 라이브를 시도하고 있었다. 황 계장은 먼저 방송 송출실로 뛰어 올라갔다. 당시 진행되고 있는 생방송을 끊고 의장의 긴급 담화를 생방송으로 내야 한다고 전달했다. 3일 오후 23시57분쯤,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의장 긴급담화를 촬영중인 팀과 송출실 생방송 연결이 가까스로 이뤄졌다.

이후 본회의를 생방송으로 송출해야 했다. 본회의장에 촬영팀을 배치하고 생방송을 시작했다. 본회의는 4일 오전 0시47분에 개의했고 무사히 모든 장면을 방송할 수 있었다.

황 계장은 30여년간 국회에서 근무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도 경험했다. 그때마다 의원들은 국회의장이 본회의장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황 계장은 그러한 경험 때문에 어느 정도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지만 "계엄 상황은 그 때와는 비교 불가"라며 “열정적인 후배들이 계엄군에 가까이 다가가 촬영을 해서 다칠까 우려돼 가까이 붙지 말라고 계속 전화를 했다. 현장에 나가고 싶었지만 팀을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걸 지켜보고 있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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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육익 계장은 30여 년간 국회에 근무한 경험으로 비상계엄 사태에서 국회방송이 긴급 생방송을 내보낼 수 있도록 했다.
“정전 됐을 경우, 국민들이 볼 수 있는 건 기록밖에 없다는 각오까지 했다”
김영진 의사국 의정기록과 주무관은 속기사다. 김 주무관은 비상 호출을 받고 3일 오후 11시40분쯤 국회에 도착했다. 김 주무관이 국회에 도착했을 때는 계엄군이 국회를 침탈하기 전이었다. 또 경찰이 직원 출입을 통제하지는 않을 때였다. 김 주무관은 경찰이 국회를 막고 있긴 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채 본관 1층 의정기록과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때부터 동료들에게서 경찰이 국회를 막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국회 상공에 헬기가 떠 있다는 등의 연락을 받았다. 믿어지지 않아 겉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가보려고 했으나 이미 계엄군의 본청 진입을 막기 위해 사무 집기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친 상태였다. 그때부터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김 주무관은 “경내에 들어오면서 경찰만 봤지 계엄군이 온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동료들이 헬기가 떠 있다고 얘기하는데 처음에는 의장님이 헬기를 타고 출근하시는 건가 했다. 그 헬기에는 정말 계엄군이 타고 있던 거였잖나”고 말했다.

이후 김 주무관은 세 명의 다른 속기사들과 함께 본회의 속기 지시를 받았다. 본회의장 의장석 바로 아래 속기사 좌석에 들어갔을 때가 4일 오전 0시 30분쯤이었다. 김 주무관은 “당시 의원들이 많이 와 있었다. 이 정도면 본회의를 열어서 계엄 해제를 의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대기를 하는 상황에서 촉박한 느낌이 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당시 의원들이 외친 말들을 떠올렸다. 김 주무관은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계엄군이 국회 방송 시스템을 무력화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국회의사당을 정전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당시 계엄군은 야간투시경을 착용했다. 깜깜한 상태에서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장비까지 준비해 온 것이다. 하지만 국회는 한밤중 정전이 되면 본회의 진행 과정을 영상으로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힘든 상황이었다. 김 주무관은 “그랬을 경우에는 정말 저희 기록만 남게 되는 상황이지 않나.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각오까지 했다”고 말했다.

자리에 앉은 상태에서 개의까지 걸린 시간 17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개의 이후에도 표결까지 13분이 더 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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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사무관은 계엄군이 국회의사당을 정전시켰을 때에는 오로지 속기록만 기록으로 남는다는 각오로 본회의를 기록했다.
보통 사람들이 막은 비상계엄 해제... 그러나 집권 여당은 민주적 시스템마저 짓밟아
12월 4일 새벽 0시 47분, 본회의가 개의됐다. 의원들은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준비하며 긴박하게 움직였다. 새벽 1시, 결의안이 상정됐고, 재석 의원 190명 전원이 찬성하며 결의안이 통과됐다. 당시 계엄군이 본청에 진입하려 했지만 보좌진들이 온몸으로 막았다.

황육익 계장은 그 순간에 대해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것 같았”며 “보좌관들도 맨손으로 군인들을 막고 시민들도 장갑차를 막았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고 그냥 몸이 움직여서 '이건 해야 된다'는 그런 사명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불법계엄을 막아냈지만 집권 여당은 표결이라는 민주적 시스템마저 짓밟았다. 1차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상정된 지난 7일, 국민의힘은 단 세 명의 의원을 제외하고는 표결조차 참여하지 않았다. 심지어 주호영 국회부의장마저 탄핵소추안 표결 직전 본회의장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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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보좌진과 직원들은 2차계엄에 대비해 계엄군 헬기가 쉽게 착륙할 수 없도록 국회 잔디밭에 자신의 차량을 주차하며 대비했다.
일부 국민의힘 의원은 윤석열의 불법계엄을 옹호했다. 지난 11일 열린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1997년 대법원 판례에 비상계엄은 고도의 정치행위, 통치행위로 보고 있다”고 했다. 다음날(12일) 오전 윤석열은 또다시 긴급담화를 내고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냐”며 “질서유지를 위해 소수 병력을 잠시 투입한 게 폭동이란 말인가? 저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라고 했다.

2차 탄핵소추안 상정하기 전날 밤, 우원식 국회의장은 긴급 상황에 대비해 또다시 국회에서 잠을 청했다. 국회의장실 보좌진과 참모들도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연이은 밤샘 근무에 허리가 아파 바닥에 박스를 깔고 잠을 청한 직원도 있다.

1차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2차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직전까지 투표 참여 여부를 논의했다. 결국 자율투표로 결론을 냈다. 결국 가결 정족수보다 4명 더 많은 204표로 탄핵소추안이 가까스로 통과됐다. 국회는 대통령 탄핵소추의결서를 헌법재판소와 대통령실에 송달하면서 계엄해제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소임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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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계엄 직후, 국회 앞으로 모인 시민들은 무장한 계엄군을 맨몸으로 막아냈다. 한 시민이 '민주주의는 윤석열 따위에게 굴복하지 않는다'라고 적은 종이를 들고 있는 모습.
담을 넘을 때(3일) 하늘을 봤던 게 기억이 나요. 그때 달이 얇았었는데 오늘(14일) 이렇게 또 하늘을 보니까 보름달이 떠 있어서 아 시간이 정말 많이 지나왔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 원은설 국회의장실 정무비서관


딱히 뭔가 생각을 하고 움직였던 것 같은 아니고 그냥 몸이 먼저 반응을 하고 그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와 이거를 이렇게' 그런 거죠.
- 황육익 국회방송 뉴미디어영상과 계장


보람감 그런 거를 위해서 제가 이 길을 선택했었기 때문에 계엄 사건 때를 생각하면 보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 생각했다, 선택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 김영해 국회사무처 기획조정실 디지털정책담당관실 주무관


대통령이 계엄군을 동원해 국회를 침탈하자 수많은 시민들이 힘을 합쳐 이를 막아냈다. 그러나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윤석열 일당은 버티기를 넘어 뒤집기에 들어갔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도 우리 주권도 여전히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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