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동지를 설 다음가는 큰 명절로 여겼다. 조선 순조 때의 세시풍속서 <동국세시기>에 “동짓날을 아세(亞歲), 즉 ‘작은 설’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동지를 ‘작은 설’로 부른 데에는 ‘태양의 부활’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동지에는 팥으로 죽을 쒀 먹거나 팥죽을 집 안 곳곳에 뿌리는 풍습이 있다. 팥의 붉은빛이 나쁜 기운을 쫓아내 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생겨난 풍습이다. 임금의 곤룡포가 붉은색이고, 옛날에 시집가는 여자의 얼굴에 붉은색의 연지와 곤지를 찍은 것도 같은 이유다. 또 팥죽에는 찹쌀가루나 수수가루로 동그랗게 만든 것을 넣는다. 이를 ‘새알’로 부르는 사람이 많은데, 바른말은 ‘새알심’이다. 알이 생명을 상징하듯이, 새알심에는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팥은 동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만 식재료로 쓰는 곡류다. 작고 단단해 서양 대부분의 나라에서 식용을 포기한 팥을 우리나라와 중국·일본 등에서 식재료로 사용하는 데는 이러한 민간 신앙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절기와 달리 동지는 해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동지가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兒冬至), 중순에 들면 중동지(中冬至), 하순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로 불리는 것이다. 이 중 애동지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는 반면 중동지와 노동지는 ‘우리말샘’에만 올라 있다.
동지가 지나면 해가 점점 길어지고 만물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동지 지나고 열흘이면 죽장 짚은 늙은이가 10리를 더 간다”라거나 “동지가 지나면 푸성귀도 새 마음 든다”는 말이 그래서 생겼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 후 혼란과 대립으로 어느 해보다 춥게 느껴지는 이 겨울. 이제 동지도 지났으니 우리 곁에서도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빨리 길어졌으면 좋겠다.
엄민용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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