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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특파원 리포트] 로제·정식당에서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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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24년 새해 첫날인 1일 오전 전남 완도군 신지면 동고리해수욕장 앞 바다 해돋이 모습./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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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가깝게 지내는 미국 기자는 며칠 전 “한국은 외교적으로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30여 년간 유엔 출입기자를 하고 있는 그는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 러시아, 북한으로 이어지는 세력에 맞서야 하는 미국에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어딘가 미덥지 못하다는 인상을 준다”면서 “한국이 일본보다 (미국에) 더 가까운 우방국으로 파고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 중요한 순간을 계엄 파동으로 날렸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이시바 총리를 ‘패싱’하고 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배우자 아베 아키에 여사를 먼저 플로리다주(州) 마러라고로 초대한 것을 보면 크게 틀리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이번 계엄 및 탄핵 사태가 국내에서는 정치 싸움일지는 몰라도 외국에서는 국가 신인도에 대한 문제로 본다. 각국 외교관들이 계엄 사태 이후 한국 외교관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처음엔 별다른 이상 없는 것 같았던 국제 금융 시장에서도 미세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해외에 나와 있는 한국 금융사들은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자 외국 투자자들이 ‘굳이 한국에?’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시간이 흐르며 차차 나타나게 될 후폭풍도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전 세계는 내달 20일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눈과 귀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한국은 선장을 잃은 배처럼 공해상을 떠돌고 있다. 누가 봐도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의 모습은 아니다. 혁신, 창의, 자유 등 수십 년간 쌓아 올린 한국의 이미지도 이번 사태로 추락했다. 외신을 타고 퍼진 한국의 모습이 폭동과 쿠데타 등으로 얼룩진 ‘제3세계’ 국가들과 얼마나 달라 보였을지 의문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주워 담을 수 없다면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누군가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불행한 일이지만 권력 투쟁에 나선 정치권에 이 역할을 바랄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경쟁력을 갖춘 민간 기업이, 지혜로운 부모 세대가,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젊은 층과 힘을 합쳐 거친 파도를 뚫고 나가야 한다. 한강의 기적을 만든 것은 애국심으로 가득 찬 국민과 기업의 헌신 덕이었지 결코 정치가 중심이 아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난 9일 뉴욕의 한식당 ‘정식’은 미국 한식당 최초로 미슐랭에서 최고 등급인 3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되며 프랑스, 일본 식당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한국 걸그룹 멤버 로제는 한국의 술 문화를 ‘아파트’라는 곡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며 세계를 뒤흔들었다. 11월 말 미국 최대 쇼핑 시즌인 블랙프라이데이 때 현지인들은 삼성 휴대전화와 LG 가전을 사려고 ‘오픈런’을 했다. 정치가 무너져도 한국의 소프트파워와 기술력이 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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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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