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2세대 여성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신경아 한림대학교 교수. 1978년 동일방직 '똥물 투쟁'을 시작으로 50년 가까이 여성 운동 현장과 대학 강단을 오가며 이론과 실천을 이어 온 그에게 2024년 겨울 국회의사당 앞은 특별한 장면으로 기억될 모양이다. 거리를 가득 메운 채 응원봉을 들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는 청년 여성들. 그들은 과거처럼 전체 운동에 '복무'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당당히 광장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신 교수는 광장으로 쏟아져나온 지금의 청년 여성에 대해 "페미니즘을 삶의 방식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나타난 최초의 세대"라고 했다. 이 신세대를 만들어 낸 1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윤석열 대통령이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데 저 말이 정말 맞나' 의구심을 갖게 하면서 오히려 평범한 여성들이 각성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 돌린 정부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그의 우려대로,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 돌린 윤석열 정부는 결국 제 명을 반으로 단축시켰다.
신 교수는 윤석열 정부뿐 아니라 이전 보수 정부가 자행했던 백래시 시도에도 주목했다. 그는 과거 이명박 정부가 여성부 폐지를 시도하며 이전 정부의 성과였던 여성 정책들을 후퇴시켜 지금 청년 여성들의 엄마들을 집으로 밀어 넣은 결과가 바로 지금 사태를 초래한 배경 중 하나라고 지목했다.
"청년 여성들이 각성하게 된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이들의 '엄마'다. 이 엄마들이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 많다. 그때는 페미니즘 교육을 막 1000명씩 들었다. 그런데 그 여성들이 다 어디로 갔나. 일터에서 나와 집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딸에게는 '너는 네 인생 살아라'고 한다. 윤석열 정부가 일찍 막을 내리게 된 상황이 된 것은 한국 사회가 여성들을 집으로 밀어 넣은 부메랑 효과, 자업자득이라고 봐야 한다."
그는 청년 여성들이 역사상 최초로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로 부상한 지금, 여성들의 정치 세력화를 독려하는 동시에 청년 남성이 고립되지 않게 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많은 남성은 여성과 잘 지내고 싶고, 만나고 싶어 한다. 다만 여학생들이 믿을 수 없다고 거부하는 것이다. 결국 안전하지 못한 사회를 만들었을 때 피해자는 여성도 있지만 남성도 있다. 남녀 갈등이 심해지면, 남자들은 인간의 친밀한 관계 같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간다. 굉장히 불행한 현실이다. 지금 청년 남성들이 굉장히 우울하다. 자살률이 높다. 만약 그들에게 정말 따뜻한 관계, 친밀한 관계가 있다면 그들을 붙잡아줄 수 있을 텐데, 자기를 붙잡아줄 관계에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남성에게도 필요하다."
다음은 신 교수와 지난 18일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신 교수 사무실에서 나눈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번 편에서는 여성 운동의 역사, 보수 정권의 백래시, 다음 편에서는 동덕여대 사태와 '민주당과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대화를 실을 예정이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 ⓒ프레시안(박상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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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예민한 여성, '광산의 카나리아' 같은 존재"
프레시안 : 이번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에 직접 참여했나.
신경아 : 물론이다. 주말 집회뿐 아니라 여성들 시국 선언할 때도 가고, 그 전 집회들도 자주 갔다. 페미니즘은 실천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이 현실에서 본인 의지만으로 깨기 어려운 구조적인 장벽이 있다. 그걸 깨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힘을 모아 연대해야 한다. 페미니즘의 역사도 그러했다. 여러 장벽을 뚫어온 역사가 결국 현실을 변화시키는 운동이다.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고 전략을 찾기 위해서 마련하는 게 이론이다. 그래서 정말 많은 시위를 나갔다. 여성학자로서, 사회학자로서 필수적인 의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그 어느 때보다 이번 탄핵 집회에서 젊은 여성의 참여도가 높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현장에서 몸소 체감했나.
신경아 : 그렇다. 집회를 매일 나간 것은 아니지만, 처음 갔을 때부터 청년 여성이 많아서 정말 깜짝 놀랐다. 물론 역사적으로 따져 보면 이미 2008년 미국 소고기 수입 파동 때 '촛불소녀'와 유아차 부대가 있었고 그 이전에도 여성의 집회 참여는 익숙한 것이긴 한데, 이번에는 유난히 더 그런 것 같다. 단순히 수가 많은 것도 있지만 청년 여성이 문화를 바꿔놓았기 때문에 이런 평가가 나온 것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사회학자이자 여성학자로서 이번 집회에 2030 여성 참여율이 높은 이유를 분석해달라.
신경아 : 2008년 10대였던 촛불소녀가 20대 때는 박근혜 탄핵 집회에 나왔고, 지금은 30대가 되어 윤석열 탄핵 집회를 이끈 것이다. 정치‧민주주의에 대한 여성의 민감성에 대해 나는 이렇게 비유한다. 여성은 '광산의 카나리아'라고. 광산이 무너져 산소가 부족하고 결핍되기 시작하면 카나리아들이 먼저 죽거나 알아채고서 갱을 탈출한다. 여성이 그러한 역할을 해왔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그걸 가장 먼저 예민하게 알아채는 그런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멀리 가면, 1979년 YH 사건이 있다. 그때 10대 여성 노동자들이 몸을 던져 싸웠고, 그 일이 결국 18년에 걸친 장기 독재를 한 박정희 정권을 몰락시킨 도화선이 됐다.(☞관련기사 : "깨질 거면 크게 깨지자" 여성들의 결의, 유신 붕괴의 도화선 되다) 최근으로 오면 2016년도 마찬가지였다. '강남역 살인 사건'이 2016년 5월에 일어나고 많은 여성이 강남에 모였다. 물론 남성들도 많이 있었지만 당시 여성이 중심이 됐다. 그 흐름이 9월, 10월까지 이어졌고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와 맞물려 이화여대 시위, 광화문 시위로 이어져 박근혜 탄핵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미투(MeToo) 정국이 열렸다. 한국 사회 민주주의와 관련한 주요한 흐름, 중요한 사건, 중요한 장면마다 항상 여성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청년 여성들이 아주 집단적으로 등장해 집회 문화를 새롭게 바꿔버리지 않았나. 나에게는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기성세대, 특히 중장년 남성들 가운데서도 민주화 운동을 열심히 해오신 분들은 엄청나게 새로운 현상으로 보이는 것 같다. 그분들께 '앞으로도 좀 더 관심을 가지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시민단체 촛불행동 주최로 열린 '내란수괴 윤석열 헌재는 즉각 파면하라'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 및 파면을 촉구 손팻말과 응원봉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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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청년 여성은 집단적으로 페미니즘 받아들인 최초의 세대"
프레시안 : 여성 운동이 꾸준하게 이어져 오고 있었음에도 유독 이번 집회에서 젊은 여성의 참여율이 높았다면, 그것은 윤석열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한 비판 차원으로 볼 수 있다고 보나.
신경아 : 그렇다. 윤석열 정권의 반(反)여성 정책에 대한 거부 반응이 표출된 것으로 봐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반페미니즘 경향이 심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러한 기조는 2000년대 이후 보수 정권의 일관된 흐름이기도 했다는 점을 짚지 않을 수 없다.
배경을 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여성 운동은 1987년 민주화 이후 1990년대 들어 성과가 나타났다. 남녀고용평등법이 만들어졌고 가정폭력 관련 법들도 새롭게 바꾸고, 2000년대 들어선 여성부가 신설되고 성매매방지법도 만들어지면서 87체제 성과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문제는 87년 체제를 만들어낼 때 민주화 세대 안에서 여성의 위치라는 것이 그렇게 견고하지는 않았다. 여성들은 분명히 굉장히 여러 가지 방식으로, 노동이나 문화 운동, 또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같은 인권 세력으로 참여를 했지만 그것들이 하나의 여성 운동으로 명명되지는 않고 어머니들의 운동, 노동자들의 운동으로 여겨졌다. 여성 운동은 늘 부문 운동이라는 굴레에 갇혀 있었고, 항상 전체 운동에 '복무해야 된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 인식 속에서 여성은 자칫 잘못하면 분리주의, 분파주의라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해야 했다.
그러다가 2000년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여성 정책이 국가 정책의 굉장히 중요한 기조로 부상했다. 여성 운동의 경험과 지식을 가진 분들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들어가서 페모크라트(femocrat; 국가 관료조직 안에서 일하는 여성)로 활동을 해서 제도적인 개선을 이루어낸 것이다. 사실 당시에는 미진하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엄청난 성과였고, 그때가 (여성 운동‧정치의) 황금기였던 것 같다.
그런데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따르는 법이다. 여성 정책이 황금기를 맞이하자 반작용으로 소위 말하는 보수당에서는 여성 의제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1990년대까지는 시민사회가 가장 앞서고 그 다음엔 민주당이 따라오고, 보수당도 같이 협력해왔다. 가정폭력방지법 같은 것도 보수당에서도 같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런데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민주당과 보수 계열 정당의 격차가 커졌다.
그리고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게 이명박 정부의 등장이었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이명박 정부 때도 초기에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시민사회, 여성계 반대가 겨우 막았다. 이명박 정부가 여성에게 한 일 중 가장 나쁜 것이 낙태법이었다. 여성도 남성도 거부해서 수십 년간 사문화되어 있던 법을 가지고 와서 실제 낙태 금지를 시키면서 피해 사례가 상당히 많이 발생했다. 낙태 금지법을 다시 가져온 게 일종의 '백래시'인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성과를 공격한 셈이었다.
그러다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페미니즘 리부트'가 시작됐다. 2015년경에 학교에서 여학생들에 대한 성추행 사건들이 많았다. 학생들은 너무 힘이 없으니 그 전까지는 침묵을 강요당하고 살다가 온라인을 통해 이를 고발하는 목소리들이 어느 순간부터 터져 나왔다. 그런데 그 시기, 한국 정치에서 매우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다. '윤석열 씨'보다 더한, 이준석이라는 사람이 남성들의 표를 끌어모으며 정치권 전면에 등장했다. 이준석은 내용은 없는데 남성들을 자극시켜서 자신의 지지 기반을 만들어 정치적으로 득을 봤다. 그러다가 어느 날 국민의힘 대표가 되고, 같은 당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씨는 갑자기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SNS에 공약인 양 올렸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상징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런 설명도 없고 누구도 설명하지 않고 단 일곱 자만 올렸다. 이준석이 어느 방송에 나와서 그랬다고 하더라. '내가 그런 걸(여가부 폐지를 SNS에 올리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그러니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말을 던져버린 것이다. 누가 어떤 계기로 그런 공약을 내세웠는지 나중에 파헤쳐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대선에서 0.73%p 차이의 아주 작은 차이로 윤석열이 대통령이 됐는데, 비전도 없고 책임감도 없는 데다가 처음부터 인기가 별로 없었으니 자신의 지지 기반이 필요했었을 것이다. 그 지지 기반 중 하나가 극우였고 또 하나가 청년 남성이었다. 그래서 계속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하고, '무고죄 폐지'를 던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SNS에 올린 글 갈무리. |
그러고 나서 지금 2년 반이 지났다. 그동안 학교 교과서에서는 아예 성평등이라는 말이 사라졌고, 여성가족부는 거의 식물 부서로 전락했다. 특히 여가부에선 성평등과 여성 노동 관련 예산을 없애버려서 그간의 성과를 무너뜨리는 상황이 되었다.
다들 먹고 살기 바쁘니까 페미니즘에 대해 특별한 의식이 있는 청년 여성이 얼마나 되겠나. 그런데 그런 사람들마저 여성이 공격받는 느낌을 받으니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데 저 말이 정말 맞나' 이러면서 오히려 평범한 여성들이 각성을 하게 돼버렸다. 사실 여성가족부 하면 '게임 못 하게 셧다운하자'고 했던 일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부처인데, 지금의 청년 여성은 윤석열 때문에 여가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됐다. 지금 응원봉 들고 집회에 나온 청년 여성들은 과거처럼 주체성을 갖고 페미니즘을 공부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집단적으로 각성해서 페미니즘을 받아들이게 된 최초의 세대라고 본다. 윤석열이 페미니즘에 대한 장벽을 무너뜨리고 보편화시킨 일등 공신이 된 셈이다.
참고로, 나는 2030 여성이라는 표현 대신 청년 여성이라고 표현한다. 2030은 단순한 생물학적 나이라고 생각하고 청년이라고 하는 건 같은 시대에 태어나서 동시대에 중요한 역사적 경험을 한 역사적 세대의 개념이다.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처럼 지금의 청년 여성들이 그런 세대적인 특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학술적으로는 청년 여성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적합하지 않나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의 몰락, 여성들을 집으로 밀어 넣은 부메랑 효과"
프레시안 : 윤석열 대통령이 페미니스트 탄생을 부추겼고, 그 페미니스트들이 윤석열 정부의 몰락에 기여했다고 봐야 하나.
신경아 : 연구자들이 좀 더 연구를 해봐야 하겠지만, 윤석열 씨가 처음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을 때, 그렇게 해서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나는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 돌린 정부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했다.
여가부 폐지 공약, 성평등 정책 폐지, 교과서에서 성평등 삭제, 이런 게 사실은 10대 여성들이나 20대 여성들에게는 더 문제로 문제적으로 와닿을 수 있다. '이 정부는 여성은 밟고 간다'는 하나의 시그널(신호)로 느끼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 전반에서 여성 성별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제도들이 아주 미미하지만 시행되고 있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는 시그널을 국가가 준 것이다. 그럼 일반 기업에서도 채용이나 승진 등 인사를 할 때 여성에 대한 고려 없이 사업주 마음대로 선발하고, 출산이나 육아휴직 제도도 기대하기 어려워지지 않겠나.
그리고 젠더 폭력에 대해서도 국가가 관심 없어 보이니까 계속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정부 들어 관련 통계에서 수적 증가가 나타나기도 했다. 대검찰청 자료를 보면 2022년 직후부터 수적으로 젠더 폭력 피해 사례가 늘어난다. 여성 혐오하고 아주 밀착돼서 나타나는 것이다. 화가 나서 죽이는 여성 혐오에 기반한 폭력은 굉장히 치명도가 높은데, 그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대응하려고 하는 의지도 없어 보이니 여성들이 분노가 차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청년 여성들이 각성하게 된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이들의 엄마 때문이다. 이 엄마들이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 많다. 1990년대는 한국의 대학사에서 가장 황금기였고 서태지 아이들이 나온 문화 부흥기 시대였다. 성평등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그때는 페미니즘 교육을 막 1000명씩 들었다. 그런데 그 여성들이 다 어디로 갔나. 일터에서 나와 집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딸에게는 '너는 네 인생 살아라'고 한다. 실제로 지금 청년 여성들은 집단적 비혼이나 비출산이 반사회적이라고 공격 받으면 '우리 엄마가 그렇게 하랬는데요'라고 한다. 지금처럼 윤석열 정부가 막을 내리게 된 상황이 된 것은 한국 사회가 여성들을 집으로 밀어넣은 부메랑 효과, 자업자득이라고 봐야 한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 ⓒ프레시안(박상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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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남성은 여성과 잘 지내고 싶고, 만나고 싶어 한다"
프레시안 : '촛불 광장에 여성이 많이 나온 게 뉴스가 아니라 반대로 청년 남성들이 안 나온 게 그게 뉴스'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신경아 : 나도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사실 내 수업을 듣는 남학생들은 굉장히 적극적인데 친구들은 어떠냐고 물어보니, 친구들이 별로 안 나가려고 한다고 하더라. 일단 이번 사태에 대해 말 자체를 안 하려고 하고, 광장 나가는 건 더욱 회피한다고 하더라. '회피'라는 말을 썼다. 왜 그런 것 같냐고 물어보니, 자신이 지지한 정치 세력이 너무 무참한 행태를 보여서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이 청년들도 자신이 지지한 이들이 민주주의를 완전히 무너뜨렸다는 걸 안다. 그래서 배신감, 분노감이 드는 것이다. 여기에 자신이 그걸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내지는 불편감이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다. 우리 모두 대선 때는 윤석열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지 않나. 첫 번째 선택은 잘못할 수 있다. 두 번째 선택의 기회, '세컨 찬스(second chance)'가 있다. 그때 좋은 선택을 하면 된다. 대신 이번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을 해봐야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광장에 나와보면 더욱 좋고.
우리 학생 중에 3일 밤에 여의도에 간 친구가 있었는데 남성들이 너무 없어서 속상했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미안해했다. 확실히 초반에는 청년 남성 참여가 낮았다. 그런데 내가 영상도 자주 찾아보고 비교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늘어나는 게 보인다. 탄핵 표결 때도 1차 때보다 2차 때는 남녀노소 다 많이 나온 게 눈에 보였다. 청년 남성들도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언론에서 남성이라고 호명하는 그 남성은 과연 누구인가. 청년 남성 가운데 일부가 여성을 혐오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보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 많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제 수업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제 수업에 남학생들이 많은데, 군 가산점제에 대해 토론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아무도 찬성을 안 했다. '이미 위헌으로 판단이 끝난 사안을 왜 끄집어내냐. 우리가 왕조시대로 돌아갈 필요 없지 않나. 토론 자체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청년 남성들 가운데 일부를 제외하면 성차별 문제에 대해 대부분은 무의식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본다. 이들은 본인이 남성으로 태어난 것도 별로라고 생각한다. '왜 남자로서 출세를 해야 해? 생계 부양자가 돼야 돼? 케이(K)-장남 너무 싫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는 페미니즘 공부를 해본 부류다. 뭔가 짧지만 강렬한 접촉이 있었을 때, '조우'라고 표현하지 않나. 그냥 친구 또는 여자친구를 통해 페미니즘을 조우하면서 굉장히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많은 남성은 여성과 잘 지내고 싶고, 만나고 싶어 한다. 다만 여학생들이 믿을 수 없다고 거부하는 것이다. 결국 안전하지 못한 사회를 만들었을 때 피해자는 여성도 있지만 남성도 있다. 남녀 갈등이 심해지면, 남자들은 인간의 친밀한 관계 같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간다. 굉장히 불행한 현실이다. 지금 청년 남성들이 굉장히 우울하다. 자살률이 높다. 만약 그들에게 정말 따뜻한 관계, 친밀한 관계가 있다면 그들을 붙잡아줄 수 있는데, 자기를 붙잡아줄 관계에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남성에게도 필요하다.
내가 언제 여론조사 하는 분이랑 굉장히 격하게 토론을 한 적이 있다. 그분이 '정당은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왜냐고 물어보니, 여론조사를 할 때 항목에 민주주의‧ 페미니즘 등등을 넣어놓고 '당신이 좋아하는 혹은 싫어하는 이념 순으로 고르라'고 했더니, 그 결과 페미니즘은 제일 싫은 것 중에선 위에서 두 번째, 좋은 것 중에선 끝에서 두 번째 안에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묻지 말고, 당신은 성폭력에 찬성하십니까' 이렇게 한 번 물어보라고 했다. 누가 찬성하겠냐고. 워낙 페미니즘 용어가 왜곡돼서 '나 페미니스트'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 많지 않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한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를 물으면 반대할 사람 많지 않다.
그리고 여성 혐오한다는 이들도 아무 데서나 대놓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대학에서만 봐도, 나 같은 선생이 있을 땐 대놓고 표현 못 한다. 그런데 '여성이 드세다, 이대남 불쌍하다'고 말하는 교수 수업에서는 눈빛이 달라진다. 그러니까 혐오 발언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게 하는 그런 환경이 혐오와 적대 감정을 키우는 것이다.
프레시안 : 여성의 정치 세력화에 의미를 부여하다가 자칫 성별 갈등을 만들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조심스러움이 있다.
신경아 : 그럼에도 일단 여성은 정치 세력화가 되어야 한다. 그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모든 운동은 중심을 주체 세력은 있어야 한다. 주도 세력이 있고 거기에 함께 연대하는 세력이 있다. 이번 집회에서 주도 세력은 분명히 청년 여성이었다. 청년 여성들이 역사상 최초로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로 지금 이제 부각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청년 남성들은 옆에서 지지하고 연합하면 된다. 청년 여성들을 세력화시키는 작업과 동시에 청년 남성이 고립되지 않게 하는 작업을 동시에 병행해 나가야 한다. 여성의 정치 세력화를 언급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계속)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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