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
유난히 추운 지난 주말, 그것도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짓날 우리는 역사적인 투쟁을 만들어냈다. 농민들의 트랙터 행진이 폭력, 위헌 경찰에 막힌 남태령 고개에서, 광화문 탄핵 촉구 집회를 마친 시민들과 농민들이 만났다. 그리고 이들이 함께한 투쟁으로 약 32시간(!) 대치 끝에 막힌 길을 기어코 뚫어냈다.
경찰의 벽을 돌파했다는 결과보다도 벅차오르게 만든 것은 소중한 주말 이틀 동안 함께 투쟁해 온 시간 그 자체였다. 대중교통이 끊기는 야간에도, 다음 날 아침에도 2030 여성들을 비롯한 시민들이 합류했고,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세대와 지역, 계층을 가로지르는 연대가 이어졌다. 평소 섞일 수 없어 보이던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발언하고 지지했다. 현장에 오지 못한 이들은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 현장에 물품으로 연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직도 시민의 집회 권리를 탄압하며 내란 우두머리를 지키는 국가권력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고, 앞으로도 소중한 감각으로 남을(남길 바라는) 장면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우리는 윤석열을 즉각 체포하고 구속하라고 외쳤다. 내란 우두머리와 그 세력을 단죄하는 것은 미래를 위해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만으로 결코 만족할 수 없다는 것도 확인했다. 당장 시계를 비상계엄 이전, 12월 2일로 돌려보면 그 이유가 자명해진다. 그때도 여전히 검찰이 권력을 남용하고, 반대하는 자의 입을 틀어막으며, 방송을 장악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억압하는 세계였다. 재벌과 부자 감세 속에서 공공서비스는 줄어들고, 개인과 자영업자의 부채는 늘어나던 세계였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번에 상기시켜 주었듯, 기득권의 이해를 건드리는 정책에 거부권을 남용하는 세계였다.
광장에서 쏟아져나온 각자의 부정의와 차별 경험을 들어보면, 새로운 세계는 단지 정권이 교체된 세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거대 양당 간 정권 교체는 이미 여러 번 경험했다. 시민들이 거리에 모여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정권 교체를 이뤄낸 경험도 있다. 그리고 그 결과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추세를 변화시키지 못한 저출생과 높은 자살률, 노인빈곤율 등은 정권의 변화만으로는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는 방향으로의 사회개혁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대선과 총선을 압도했던 민주당은 5년 만에 윤석열에게 정권을 넘겨야만 했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위해, 승리의 광장 민주주의가 일상으로 뻗어나가고 뿌리내리길 원한다. 그것은 우리가 학교와 직장 등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고, 공적인 공간에서 배제되지 않는 것이다. 이를테면, 일터에서 아프면 눈치 보지 않고 쉬겠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아프다는 이유로 해고당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며, 또 아파도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유급 병가와 상병수당을 도입하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윤석열을 탄핵한다고 장애인의 권리가 저절로 보장되지 않는다"고 외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의 목소리가 지워지지 않고, 여성 혐오 없이 윤석열 탄핵을 외치자는 페미니스트 활동가의 발언이 일상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민주주의다. 또한 "여러 형태의 박탈 행위와 차별대우로 고통을 받고 … 이름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무관심 속에 몸을 맡기고 살아오고" 있는, 데이비드 소로의 표현을 빌리면 '조용한 절망', 알린스키가 '조직화된 비관심', 또는 '조직화된 비참여'라고 부르는 형태로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가 공적 공간에서 타자에게 받아들여지고 응답받는 게 민주주의다(사울 D. 알린스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아직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 전, 부산 집회에서 스스로를 '술집 여자'라 소개한 여성의 발언은 많은 사람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죽어가는 쿠팡 노동자, 성매매 여성들의 삶의 터전 파괴, 동덕여대 사건,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 여성을 향한 데이트 폭력, 차별금지법, 이주 노동자 아이들 차별, 지역 혐오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완벽하지 못한 것이며, 탄핵이 되고 무사히 지금의 고비를 넘어가더라도 끝이고, 해결이고, 완성으로 여기지 말아달라고 했다.
일상의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는 것은 광장의 민주주의처럼 극적이지 않고, 지난한 과정이다. 광장에서 우리가 혼자가 아니었듯, 일상의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과정에도 함께이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몇 가지 공동체를 추천하고 싶다. 첫 번째는 진보정당이다. 선거 때마다 최악을 피해 차악이라 생각하는 것을 선택한 사람이 많다. 지금의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번 기회에 진보정당들을 살펴보고 자신의 생각과 잘 맞는 정당에 가입 또는 후원해 보길 권한다.
두 번째는 노동조합이다. 나의 이해관계, 노동자로서의 권익과 직접 관련이 있으면서, 직장 내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내가 속한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없더라도 일하는 지역의 지역본부를 찾으면 친절히 상담해 줄 것이다.
세 번째 추천하고 싶은 것은 시민사회단체다. 관심 있는 사회적 이슈가 있다면, 그와 관련한 시민사회단체에 가입해 볼 수 있다. 이들은 나의 현업이 바빠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좀처럼 신경 쓰지 못하는 사안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후원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안이 묻히지 않고 개선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가끔 시간을 내 직접 참여한다면 현장의 정보를 접할 수 있고, 비슷한 가치와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조직에 의견을 보탤 수 있다. 참고로 덧붙이면, 정당,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후원을 통해 세액공제 혹은 소득공제를 받을 수도 있다(안 되는 곳도 있다).
이번 내란 사태를 보며 공기 같던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면, 좀 더 공고한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느꼈다면, 광장의 승리를 일상으로 확장하고 싶다면,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공동체에 참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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