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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이름을 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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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충청일보

[충청광장]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이름을 '하얀'으로 바꾸어서 그냥 모든 걸 하얗게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지금까지의 족적을 모두 지우고 싶은 거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것도, 학교 다니면서 친구들에게 부모 없는 설움을 당한 것도, 자신을 학대했던 자신까지도 지워버리고 싶다고 했다. 성도 바꾸어서 부모가 못 찾아내는 곳에서 부자로 잘 살아보고 싶지만, 부자가 되리라는 꿈은 허망해서 이름이라도 바꾸고 싶다고 했다. 작고 여린 체구 안에 모든 걸 다 욱여넣은 듯 고요한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바람 부는 언덕에 켜 놓은 촛불을 보는 듯했다.

필자가 그 아이와 인연을 맺은 것은 10여 년 전, 1사1그룹 홈 활동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남자아이들의 그룹홈이었는데 몇 년을 방문하다보니 아이들이 자라 사회에 진출할 나이가 되어서 진로 상담을 해주기로 하고 자주 찾아갔다. 또래가 세 명 있었는데 두 명은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이 아이는 공부가 싫고, 빨리 그룹홈을 나가고 싶어 했다. 적성검사를 하고 진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갖고 있는 커피 바리스타 자격증으로 첫 번째 취업을 하였다. 학업에 능력도 관심도 없는데 굳이 대학을 갈 필요가 없다는 것에 우리 둘은 공감했다.

그 아이는 그룹홈을 나가서 혼자 독립하여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목표가 강했고, 필자는 허튼 에너지를 쓰는 대신 돈을 벌어서 빨리 자립을 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는 동상이몽 때문이었다. 다행이 자립을 하는데 큰 걸림돌은 없었다. 살 집은 LH에서 전세로 빌려주었고 오백만원의 자립지원금을 받고, 사소한 살림이나 당분간 먹을거리는 살던 그룹홈에서 챙겨주었다. 한동안 그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얼굴에 화장도 하고 헐렁한 새 옷을 사서 몸을 부풀리고, 갈색으로 염색도 했다.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는 없었겠지만 나름 몸을 가꾸며 미래를 꿈꾸는 듯했다. 돈 벌면 장가도 가고 싶다고 했다. 그냥 끄덕끄덕 웃어 주었다. 스무 살 그 나이에 꿈꾸지 못할 게 무엇이겠는가.

몸이 굼뜨고, 조용한 그 아이는 수시로 직장을 나왔다. 하루 이틀 견디거나, 일주일 정도, 한 달 이상을 근무한 곳이 없이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와중에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수시로 핸드폰이 정지되었고 수십 번씩 연결을 시도해도 겨우 한두 번 닿았다. 문자로는 언제나 평온했다. 잘 지내고 있는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직장도 잘 다니고 있는지, 그런 물음에 항상 '넴넴'이라고만 대답했다. 몇 번 만나서 같이 밥을 먹고 김치나, 쌀 등을 건네고 라면을 주었지만, 생기 없는 표정은 여전했다.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아이 곁을 맴도는 일뿐이었다. 혼자 사는 일은 그룹홈이라는 위탁가정에 속해 있는 일보다 더 어려운 듯했다.

그동안 친구라 칭하는 이들에게도 사기를 당했고, 나라에서 준 자기 집을 점령당해 밖에서 돌기도 했고, 취직을 한 사장에게 갈취를 당하기도 했다. 점점 사람과의 관계를 어려워했다. 며칠 전 그 아이는 문자에 긴 답을 보냈다. 그리고 전에 지내던 그룹홈 센터장이 집으로 데리고 갔다가 하루 만에 응급으로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은 듯, 기진해보였다.

보호종료 청년들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뜨겁다. 천안시에서도 그들이 그룹홈을 떠나 새로운 둥지를 틀때에 금전적인 지원도 해주고 이런저런 소소한 살림살이를 지원해 주기도 한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어른들이 곁에 있으니 언제든지 어려우면 손을 내밀어도 된다고 알려주는 일이다. 한 아이를 키워내는데 온 마을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 아이는 이름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부모가 어딘가에 있다면 이제는 그 따뜻한 품에 기대고 싶은 거다. 신기루처럼 이미 사라져버린 가정을 소원하는 그 아이는, 먼데로 눈의 초점을 둔다. 병상에 힘겹게 누워있는 아이를 보면서 차라리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의지가 타오르길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어디서부터 우리가 다시 시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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