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열며] 송남용 심리상담사
심리학자 에릭슨을 비롯한 몇몇 학자들은 성격(심리틀)이 전 생애를 거쳐 형성되는 것으로 본 데 반해 대상관계이론 학자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생애 초기 그러니까 초등학교 이전에 형성되어 이후에 점차 정교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필자는 필자와 필자의 가족들 그리고 목회할 때의 성도들과 필자가 상담한 여러 내담자들의 심리틀을 볼 때 두 부류의 학자들의 주장이 다 일리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생애 초기에 형성된 심리와 후기에 형성된 심리는 강도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본다. 어려서 형성된 심리일수록 강도가 강하다는 것이다. 강도가 강하다는 것은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치유(재학습, 변화)적 측면에서는 그만큼 변화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필자가 지니고 있는 심리틀은 겸손틀, 예의틀, 분노틀, 내향틀, 창피감틀, 도전틀, 약자위주틀, 효능감틀, 섬김틀, 나눔틀 등이 있다. 대략 그 형성 시기를 보면 겸손틀, 예의틀, 분노틀 내향틀, 창피감틀은 초등학교 이전에, 도전틀은 초등학교 3, 4학년 무렵에, 약자 위주틀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자기효능감틀은 고등학교 때, 섬김틀은 결혼 이후 기독교인이 된 후에 형성되었다. 또한 나눔의 가치관은 아내를 통해서 형성되었다.
후에 이러한 심리틀 중 몇 가지에 대해서는 다른 심리틀과 함께 어떤 환경에 의해 또는 어떤 심리적 원리에 의해 형성되었는지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있겠지만 나눔틀에 대해서만 간략히 살펴보면 필자는 결혼 이전에는 나누는 것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필자의 부모님은 책임감이나 성실성 그리고 정직성 등에 대해서는 누구 못지않게 뛰어나신 분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웃들과 나누는 것에 대해서는 별반 소질이 없는 분들이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자란 필자 역시 나누는 것이 몸에 배지 않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모방학습).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아내는 우리(필자와 필자의 원가족)와는 사는 방식이 달랐다. 조그마한 것만 있어도 시댁은 물론 이웃들과도 늘 나누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 집을 방문할 때도 빈손으로 가는 법이 없고 무언가를 준비해서 가곤 했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안 사실이지만 아내가 장모님을 보고 배운 것 같았다. 장모님은 포근하신 분이셨고 또 나누기를 잘하신 분이셨다. 어쨌든 필자는 처음에는 아내의 그런 모습이 부담되어 불평하기도 했다. 그러다 필자도 아내를 보고서 나누는 것이 조금씩 몸에 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눔틀과 섬김틀은 강도가 매우 약하다. 틀(성격)이라고 할 수 없는, 그렇게 하고자 하는 바람 또는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누거나 타인을 섬기는 것이 아직도 자연스럽지 않다. 그에 반해 겸손틀, 예의틀, 분노틀, 내향틀, 창피감틀, 도전틀, 약자위주틀, 자기효능감틀은 강도가 매우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창피감틀이나 분노틀 등은 20년 이상을 변화시키고 있지만 지금도 신경 안 쓰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올 때가 있다.
왜 이러한 차이가 있을까? 그것은 서두에서 살펴본 것처럼 생애 초기에 형성되었느냐, 생애 후기에 형성되었느냐의 차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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