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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 (수)

[하승우의 풀뿌리]‘법괴’와 저항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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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던 비상계엄은 곧바로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과 신속하게 국회로 모인 의원들 덕에 곧바로 해제되었다. 뉴스 시청과 집회의 피로에 시달리며 기다리던 탄핵소추안도 어렵사리 가결되었다. 이 정도까지 했으면 마음이 좀 편해져야 하는데, 헌법재판소로 넘어간 공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어 조마조마하다. 심지어 윤석열과 그 일당은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했고 지금도 정부는 위태로워 보인다.

법을 앞세운 괴물들

이번 내란은 법을 무시하지 않고 법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르다. 윤석열은 일단 반대파를 체포해서 조사하다보면 뭐라도 나올 거라는, 법은 해석의 여지가 있으니 나중에 절차적인 정당성을 확보하면 된다는 검사 시절의 습관을 따랐을 것이다. 외부의 적극적인 저항과 내부의 소극적인 태업이 없었다면 그들의 시도는 성공하고 내란은 합법화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윤석열을 옹호하는 세력들은 계엄이 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이니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법에 따른 어떤 해석이 가능하든, 총을 든 군대를 자신의 정치적 반대파와 시민들에게 보낸 자를 우리가 정치인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법으로만 따지면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지 않을 경우 권한을 돌려받아 내란의 수괴가 다시 대통령이 된다. 물론 이전과 같은 권한 행사는 어렵겠지만 내란수괴를 수괴라 부르지 못하고 범죄자를 범죄자라 부르지 못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인가?

지금 법과 권한을 내세워 나라를 혼란으로 몰고 가는 세력의 핵심에 법조인들이 있다. 윤석열의 등장 자체가 그 흐름을 탄 사건이고, 지금도 계엄을 옹호하는 국민의힘의 핵심인물들, 나경원, 권성동, 권영세, 주호영, 김기현 모두 판검사 출신이다. 이들은 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법을 잘 알기에 ‘다툼의 여지’를 노리고 그 여지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 합법성을 내세운 법괴들은 그 법의 정당성이 민주적인 합의에 있다는 점을 무시한다.

민주주의의 보루로 여겨지는 국회에서도 법조인은 가장 많은 직업군이다. 제22대 국회의 법조인 비중은 61명(20.3%)으로 지난 20년 중 가장 많다. 2024년 1월에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국회와 주요국 의원의 직업적 배경 비교’에 따르면 다른 나라에서는 법조인 출신 의원 비율이 감소하고 있는데 한국은 역행하는 셈이다. 이 발표에 따르면 법조인들이 국회로 들어가도 법안 발의나 가결률 등 전반적인 입법활동의 성과 측면에서는 차이가 없다.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은 이런 국회 구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헌법에 저항권을 명시하자

법이 민의를 따르지 않거나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언제나 위험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1987년 체제의 한계가 아니라 처음부터 비민주적이었던 국가건설과정의 문제다. 따라서 지금 새로운 정치질서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새로운 나라를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그 새로운 나라에도 비상계엄을 정당한 통치권 행사라고 부르는 세력들이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그들이 기득권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제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제도든 그것이 올바로 작동하도록 강요할 정치적인 힘을 만드는 것이다. 그 힘만이 법괴를 몰아낼 수 있다. 지금 불의한 권력에 맞서며 새로운 연대를 경험하고 있는 시민들이 그 힘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제 시민불복종은 일시적인 사건을 넘어 권력이 민주적인 정당성을 확보하도록 강요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한 가지 방법으로 시민의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거나 헌정 질서를 어지럽히는 부당한 공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헌법에 명시하면 어떨까?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저항권이 조항으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혁명을 경험한 여러 나라들이 시민의 저항권과 관련된 규정을 헌법에 마련하고 있는 점과 대조적이다.

이미 시민들이 꾸준히 저항해왔고 앞으로도 저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 권리를 구체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옳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낸 게 시민의 힘이라면, 정말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면 그들의 저항권을 인정하라. 시민불복종과 민주적인 법치는 동전의 양면이다.

경향신문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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