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 논설위원 |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올해의 단어로 ‘가장 나쁜 자들의 지배’라는 의미인 ‘카키스토크라시(kakistocracy)’를 선정했다. ‘나쁜, 못된’이란 뜻의 그리스어 형용사 카코스(kakos)의 최상급 ‘카키스토(kakisto)’에 지배·통치를 뜻하는 ‘크라시(cracy)’를 결합한 조어다. 17세기 영국 내전 당시 왕당파가 국왕의 과도한 징세에 항의하는 의회파를 중우정치로 몰아 공격하기 위해 잠시 써먹은 정치용어다. 이후 존재감 없던 이 단어를 부활시킨 건 트럼프였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유행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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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라니…
정치 불확실성 더 키우진 말아야
민주당, 책임정당 면모 보여주길
이 뉴스를 보고 한국을 떠올린 이도 많았겠다. 물론 올해의 단어 선정은 12·3 비상계엄 이전인 지난달 말이었고, 트럼프를 겨냥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공정과 상식을 표방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불공정과 몰상식의 아이콘이 됐다. 비상계엄 발동도 기가 막힌데 대통령의 통치행위라고 강변하며 거리의 태극기 보수에 기대기까지 하니 더 기가 막힌다. 한때 국민 절반이 지지했던 대통령이 이렇게 막 나가도 되는가. 2021년에 나온 책 『카키스토크라시』(김명훈 저)의 부제는 ‘잡놈들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미국 얘기지만 남의 일 같지 않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첫 주말이었던 지난 21일 광화문 일대는 응원봉과 태극기로 쪼개졌다. 광화문역 북쪽은 탄핵 촉구 집회가, 남쪽은 탄핵 반대 집회가 열렸다. 전광훈 목사 등이 주도한 탄핵 반대 집회도 대한문에서 동화면세점까지 차도를 메우며 세를 과시했다. 계엄에 찬성하고 비상계엄 수사와 탄핵에 반대하는 거친 주장은 영어 동시통역과 함께 주변에 쩌렁쩌렁 퍼졌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와 대통령 직무정지, 권한대행 체제라는 적법한 헌법 절차에 따라 나라가 관리되고 있다는 정부의 힘겨운 설명은 광화문 아스팔트 위에서 설 자리가 없었다.
보수 집회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대통령은 법적·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침대 축구’를 하고 있다. 보수 집회의 손팻말은 ‘탄핵 반대, 이재명 구속’이었다. 재판 리스크가 산적해 있음에도 탄핵 이후 집권 가능성이 커진 이 대표에 대한 보수의 반감이 만만치 않은 거다. 민주당이 탄핵을 서두르기 위해 의회 권력을 무리하게 휘두르면 태극기 보수의 위세를 더 키울 수 있다.
정국의 불확실성이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다수당인 민주당은 현 시국을 슬기롭게 관리하는 책임정당의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 민주당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24일까지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포하지 않으면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위협했다.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라니, 그런 혼란이 벌어져도 책임질 수 있는가.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 요건이 재적 과반인지, 재적 2/3 이상인지 명확하지 않은 건 우리 헌법이 설마 이런 막장 상황까지 염두에 두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어제 “국무위원 5명을 탄핵하면 국무회의가 (안건을) 의결하지 못한다”며 “국무회의가 안 돌아가면 지금 올라가 있는 법안들은 자동 발효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무회의마저 무력화되면 국정은 어떻게 관리하겠다는 말인가. 객관성·책임성 결여를 정치의 두 가지 치명적 죄악이라고 했던 막스 베버의 경고가 떠오른다.
경제가 걱정이다. 경제는 정치와 분리돼 유능한 관료들이 잘 관리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대내외에 주는 것 말고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지금은 한국 경제를 지켜보는 외부의 시선에 신경써야 한다. 국회가 반도체특별법이나 전력망법 같은 경제 관련법은 통과시켜 정치 혼란에도 나라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특사외교를 가더라도 뭐라도 설명할 거리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펭귄 마스코트 ‘펭수’가 예전에 했던 말처럼, 제발 눈치 좀 챙기자.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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