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2일 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중국인 간첩 사건’을 언급하는 등 부정적으로 거론하자 중국 외교부는 강한 불쾌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사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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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중국중앙TV(CCTV)와 글로벌타임스, 신화통신 등 관영 언론들은 실시간으로 한국의 정치 상황을 보도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 현장에서 생중계하기도 했다.
12월 4일 신화통신은 ‘서울의 겨울: 윤석열의 6시간 계엄령 희극’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현재 벌어지는 일들이 영화 ‘서울의 봄’과 줄거리가 같다”며 “한국이 계엄령을 선포한 것은 40여년 만인데 며칠 뒤에 그 악명 높은 12·12 군사쿠데타 45주년이 된다”고 짚었다.
중국 SNS인 ‘웨이보’와 ‘웨이신’ 등에서는 ‘서울의 봄’ 등 계엄 사태와 연관된 내용들이 인기 검색어 순위를 차지했다. 비상계엄 선포부터 국무회의 계엄 해제안 의결까지 걸린 시간을 나타내는 ‘한국의 6시간 40분’도 순위권에 올랐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를 두고도 다양한 분석이 쏟아졌다. 신화통신 산하 잡지 ‘환구’ 류훙 편집장이 운영하는 SNS 계정 뉴탄친은 “윤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내세웠지만, (계엄 선포의) 계기는 김건희 여사의 뇌물 수수 사건”이라며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전 세계의 적임을 선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중국 정부는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언급을 피해왔다. 2024년 12월 4일 중국 외교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관련 상황을 주목하고 있으나 한국 내정에 대해서는 논평하지 않는다”며 말을 아꼈다. ‘이번 사태가 한·중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라는 질문에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변함없다”고만 답했다.
그러던 중국 정부가 입장을 바꾼 것은 2024년 12월 12일 윤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중국인 간첩 사건’을 언급한 뒤였다. 당시 윤 대통령은 “거대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괴물이 됐다”며 “거대 야당은 국가 안보와 사회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근거 중 하나로 중국인의 간첩 행위를 언급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곧바로 반박했다. 중국 외교부는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끝난 뒤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측의 언급에 깊은 놀라움과 불만을 느낀다”며 “한국 측이 내정 문제를 중국 관련 요인과 연관 지어 이른바 ‘중국 간첩’이라는 누명을 꾸며내고, 정상적 경제·무역 협력을 먹칠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지적했다. 그러고는 “이는 중한 관계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에 이롭지 않다”고 했다. 중국의 반발이 커지자 한국 외교부는 2024년 12월 13일 “최근 국내 상황과 관계없이 중국과 필요한 소통을 해나가면서 한·중관계를 지속 발전시켜나가고자 한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주중대사 부임 여부 ‘불투명’
한·중 관계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던 차에 이러한 균열이 발생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앞서 중국 외교부는 한국인에 대한 ‘한시적 일방적 단기비자 면제 조치’를 발표하고 2024년 11월 8일부터 적용했다. 중국이 한국을 무비자 대상에 포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의 관계 개선 의지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러한 결정에는 2024년 10월 14일 윤 대통령이 측근인 김대기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주중 대사에 내정한 영향이 컸다. 중량급 인사를 내정하며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당시 외교가에서도 중국이 김 전 실장의 내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말이 많았다.그러나 이번 사태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김 전 실장의 부임 여부는 불확실해졌다. 애초 정재호 현 주중대사가 지난 12월 중순 귀임하고 후임자인 김 전 실장이 12월 하순에 부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사의 귀국과 임명은 대통령의 권한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사 임명 권한까지 행사할지는 미지수다.
아울러 김 전 실장이 윤 대통령의 측근인 점을 고려하면 부임한다 해도 적극적인 외교 행보를 기대하기 어렵다. 탄핵 정국을 이유로 중국이 신임 주한 중국대사로 내정한 것으로 알려진 다이빙 주유엔 중국 부대표(특명전권대사)의 한국 부임이 늦춰질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한·중관계 개선 기대감 솔솔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퇴진하면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에서 정권을 잡을 수 있어 한·중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 인터넷매체 펑파이신문은 2024년 12월 14일 “비상계엄 사태의 승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라며 “지난 대선에서 낙선한 뒤 윤석열 정부 사법부와 싸웠는데, 대선이 앞당겨져 이 대표가 당선된다면 사법 분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이보다 앞서 SCMP는 여러 전문가를 인용해 윤 대통령이 탄핵당할 경우 제1야당인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을 거론하며 이 경우 한국이 중국에 회유적인 접근을 취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고 전했다. 또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미국·일본과의 협력을 중시했던 윤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비판적이었고, 중국에 보다 절제된 접근을 할 것을 요구해왔다고 설명했다.
‘대중 강경’ 노선을 예고한 트럼프 행정부 2기와 입장을 달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앤드루 여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 동아시아정책연구센터 한국석좌는 “중국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더 많아질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수출·투자·보안·기술 관련 통제에 아주 강경하다면 한국이 따르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한국의 대중 정책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견해도 적지않다. 라몬 파체코 파르도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의 국제 관계학 교수는 “한·중 관계 전성기는 이제 지나간 일이 됐다”며 “한국의 차기 정부가 중국과 더 많이 대화할 수는 있지만 큰 흐름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광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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