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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 (수)

이슈 미국 46대 대통령 바이든

‘사형 찬성’ 트럼프 취임 전, 바이든은 사형수 37명 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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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내년 1월 퇴임 예정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3일 연방 사형수 37명에 대해 감형했다./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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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형수 37명을 ‘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무더기로 감형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측이 터무니없는 결정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사형은 미국 정치권에서 오랫동안 찬반이 팽팽하게 맞선 현안으로 공화당과 보수 진영은 존치를, 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폐지를 주장해왔다. 권력 교체를 코앞에 둔 신구 권력이 사형이라는 이슈를 통해 충돌하는 모습이다.

바이든은 23일 성명을 내고 “연방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 40명 중 37명을 ‘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감형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바이든은 대통령에게 부여된 사면권으로 총기 불법 소지·탈세 혐의를 받는 아들 헌터의 기소를 면해주고, 마약 사범 등 1500여 명을 사면·감형해준 데 이어 이번에는 사형수 37명의 형 집행을 면제해준 것이다. 감형 대상자들은 군인·경찰 살해, 연방 교도소 수감 중 동료 죄수 살해, 마약 밀매 등의 범죄로 연방 정부에 의해 기소돼 연방 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죄수들이다.

현재 연방 정부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형수 40명 중 세 명을 제외하고 형 집행이 면제된 것이다. 사형수로 남아 있게 된 세 명은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범 조하르 차르나예프(31),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흑인 교회 총기 난사범 딜런 루프(30), 2018년 피츠버그 유대교 회당 총기 난사범 로버트 바워스(51)로 테러나 증오 범죄와 연계된 대규모 인명 살상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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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감형 조치에서 제외된 사형수 로버트 바워스, 딜런 루프, 조하르 차르나예프(왼쪽부터).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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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은 “나는 살인범들을 규탄하고 그들의 극악무도한 행위로 인한 희생자들을 애도한다”면서도 “연방 차원의 사형제를 중단해야 한다는 데 강한 확신을 갖고 있고 새로운 행정부가 내가 중단한 사형 집행을 재개하도록 그대로 둔 채 물러서 있을 수는 없다”고 했다. 바이든의 이 같은 발언은 트럼프를 정면으로 겨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과 트럼프가 가장 대척점에 있던 대표적인 정책이 사형이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트럼프 측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백악관 공보국장으로 내정된 스티븐 청 트럼프 대선 캠프 대변인은 이날 “이들(사형수)은 세계 최악의 살인범들이며, 조 바이든에 의한 이 혐오스러운 결정은 피해자와 가족, 그리고 피해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미국인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당선인)이 백악관에 돌아오면 법치주의를 회복할 것”이라며 사형 재개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냈다.

미국 사회에서 사형은 낙태·동성결혼 못지않게 진영 간 찬반이 갈리는 이슈다. 사형의 위헌성을 가리는 법원 결정에 따라 재개와 중단이 되풀이됐다. 1972년 연방대법원이 모든 사형 집행은 위헌이라고 판결해 일시적으로 중단했지만 이후 법원의 판단이 바뀌면서 주 정부 차원의 사형 집행은 1976년, 연방 정부 사형 집행은 1988년 재개됐다. 그러나 약물 투여 등 집행 방식이 잔혹하다는 비판, 사형수가 억울하게 누명을 썼을 가능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형 집행은 갈수록 뜸해져 2003년 이후 연방 정부 차원의 사형 집행은 중단됐었다. 이를 부활시킨 ‘주역’이 트럼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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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진영


그의 1기 임기 사실상 마지막 해였던 2020년 7월 일가족 3명을 살해한 혐의로 수감된 대니얼 루이스 리(당시 47세)에 대해 약물 투여 방식으로 사형이 집행되면서 17년 만에 연방 정부의 사형 집행을 재개한 것이다. 이후 퇴임 전까지 총 13명에 대해 사형이 집행됐다. 하지만 트럼프를 대선에서 꺾고 2021년 1월 취임한 바이든은 연방 정부 사형 집행을 전면 유예하는 방식으로 임기 내 한 건도 집행하지 않았다.

법질서의 회복을 핵심 선거 구호로 내세워온 트럼프는 대선 유세에서 취임하면 중단됐던 사형 집행을 재개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그는 “마약 밀매상, 어린이 상대 성범죄자, 인신매매범은 사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해왔다. 반면 바이든은 이번 감형 발표를 하면서도 “나의 양심과 변호인·상원의원·부통령·대통령 경험에 따라 연방 차원 사형을 중단해야 한다고 확신한다”며 트럼프와 대척점에 섰다.

한편 백악관 주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미국에서 각 주 차원의 사형은 계속 집행되고 있다. 테러나 간첩 행위, 혐오 범죄와 연계된 흉악 범죄의 경우 연방 차원에서 수사·재판·형 집행이 이뤄지지만, 단순 살인이나 성폭행 등 각 주법에 따라 처벌 가능한 범죄에 대해서는 해당 주가 사형제를 운영한다. 이 경우 감형 또는 사면 권한은 주지사에게 있다. 다만 주 차원의 사형도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미국 비영리단체인 사형 정보 센터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사형 제도를 유지하는 주는 27곳으로 7년 전보다 4곳 줄었다. 올해 집행된 사형 건수는 총 25건인데 앨라배마·텍사스·사우스캐롤라이나 등 보수 성향이 강한 남부 지역에서 형 집행이 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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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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