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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 (수)

부산서 ‘작고 없는 사람들’의 ‘크고 넘치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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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을 받아 모은 이쁜 삼 남매 저금통 받아주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부산 북구 덕천동 덕천지구대 정학섭 경감은 24일 오전 10시 10분쯤 지구대 앞 화단 바위 위에 놓인 수상한 종이상자를 발견했다. 상자 안에는 1000원짜리 지폐 30장과 저금통, 아동 패딩, 김장 김치, 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는 “안녕하세요. 세 아이 아빠입니다. 첫째는 장애 3급, 저희는 수급자 가정입니다”라는 글귀로 시작됐다.

“폐지를 팔아 돈을 마련했지만 노력한 만큼 결실이 적게 나와 많이 못 했습니다…저희 가족이 정성을 담아 맘은 선물도 준비했습니다…돼지 저금통은 삼남매가 용돈 받아서 모았습니다…모두가 행복한 메리 크리스마스 되세요. 해피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세 아이의 아빠는 “‘맛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김장 김치, ‘아이가 마음에 들지 모르겠지만 패딩을 준비했다”며 “추운 겨울 도움이 필요한 애기 가정에 전달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24일 부산 북부경찰서 덕천지구대 앞에 놓여진 박스에 들어 있는 기부금과 기부물품들. /덕천지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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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경감은 종이상자를 보자마자 ‘아! 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지구대 앞 방범카메라를 확인했다. 영상에는 편지 작성자의 아내로 추정되는 인물이 상자를 두고 도망치듯 떠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정 경감은 “제 직감대로 지난 어린이날 때 지구대에 박스를 두고 간 사람과 동일 인물이었다”고 했다.

이들 가족은 지난 5월4일 옷과 과자, 라면, 빛바랜 천원짜리 지폐 30장과 ‘어려운 아이 가정에 전달되었으면 합니다’란 편지를 넣은 종이상자를 두고 갔다.

지난해 10월엔 “화재 진압 중에 다친 경찰관과 소방관을 돕고 싶다”며 폐지 판 돈 4만5000원을 놓고 갔다. 이를 정 경감은 그 해 9월 부산 동구 좌천동 목욕탕 화재폭발 사고 때 다친 소방관 등을 위해 동구 측에 전달하기도 했다.

정 경감은 “내 기억에 이 가족은 기초생활 수급대상자로 폐지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면서 최근 2~3년 동안 액수는 크진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은 어마어마한 기부를 8차례 이상 했다”며 “더욱 어수선하고 여러모로 썰렁한 올겨울, 지구대 앞의 ‘종이상자’.는 우리 마음을 따뜻하고 푸근하게 해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고 말했다.

최근 부산에서는 본인도 어렵지만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이들이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5일 부산 영도구 동삼1동 행정복지센터(동사무소)에 60~70대로 보이는 점퍼 차림의 남성이 수줍은 듯 쭈뼛거리며 들어왔다. 직원이 “어떻게 오셨느냐”고 묻자 그는 “연말이라 우리 동네에 어려운 사람들이 힘들 것 같아 작은 돈이지만 기부하러 왔다”고 했다.

그의 손엔 커다란 5만원짜리 뭉치가 들려 있었다. 직원이 받아 헤아려 본 돈뭉치는 5만원짜리 100장이었다. 직원이 “어디에 쓰시길 원하시느냐”고 물었다. 그는 “제도의 한계로 복지지원을 받지 못하는 동삼1동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강정선 동장 등이 나서 “성함이 어떻게 되시냐”는 등 기부자에 대한 감사를 표하려 하자 그는 “익명으로 해달라”며 자리를 뜨려 했다. 강 동장은 그런 그를 붙잡고 좀 더 대화를 나눴다. 그 과정에 그는 동삼1동에 사는 기초수급자 최모(60대)씨로 확인됐다.

강 동장은 “너무 귀하고 큰돈이라 받을 수 없다. 두고 쓰시라고 했지만, 그냥 자리를 뜨셨다”고 했다.

이후에도 며칠간 그렇게 설득했다. 하지만 최씨는 “현재 기초생활 수급대상자로 매달 생계급여가 나오고 있고 병원도 저렴하게 이용하고 있어 큰돈이 필요 없다. 내 평생 하고 싶었던 일”이라며 기부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강 동장은 “그래서 어르신의 뜻대로 그 돈을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80대 할머니가 “못 배운 게 한이라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 쓰였으면 좋겠다”며 구청에 돈을 놓고 가는 일도 있었다.

지난달 28일 오후 키가 150cm 남짓한 아담한 체구의 할머니가 부산 사하구청을 찾았다. 손에는 뭔가를 꼼꼼히 싼 신문지 뭉치가 들려 있었다.

할머니는 구청 직원에게 이 신문지 뭉치를 건넸다. 신문지에는 5만원짜리 100장, 500만원이 싸여 있었다. 할머니는 “평생 배우지 못한 게 한이어서 요즘 혼자 공부하고 있는데,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의 학업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돈은 매달 생활비를 절약해 차곡차곡 모은 것이라 했다. 할머니는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참고 어렵게 모은 돈”이라고 했다. 직원이 이름이나 거주지 등을 알려 달라 했으나 할머니는 달아나듯 구청을 떠났다.

강정선 동삼1동장은 “많이 가지지 못해 본인들도 형편이 어려워 살기 팍팍할 텐데 정작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이런 분들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는다”며 “아마도 우리 공동체가 아직 살 맛이 나는 이유가 있다면 그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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