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논설위원 |
대통령 경호원들은 ‘다 죽어도 대통령이 살면 성공, 다 살아도 대통령이 죽으면 실패’라는 직업의식을 갖고 산다. 사람은 위험에 닥칠 때 자기부터 챙기기 마련인데 이 본능을 억제하고 대통령을 지키려 자신을 희생하는 기술을 연마하는 게 경호원이다. 사적 감정에 흔들려서도 안 된다. 대통령의 정치에 동의하지 않고 존경심이 없더라도 기꺼이 몸을 던져야 한다. 경호 대상이 적대국에서 보낸 특사일 때도 목숨 걸고 지키는 게 경호원의 직업정신이다.
대통령 버리고 화장실로 숨었던 차지철
이 직업정신은 충성심과는 다르다. 충성스럽다고 경호를 잘하는 건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심복인 차지철 경호실장은 10·26 사건 당시 총에 맞은 박 전 대통령을 버려두고 화장실로 도망쳤다. 그 사이 김재규가 박 전 대통령을 확인 사살했다. 경호는 충성심이 아닌 직업정신으로 하는 일이다. 경호원들은 ‘촉수(觸手) 거리’란 말을 자주 쓴다. 누군가 경호 대상을 공격해 올 때 막을 수 있는 거리란 뜻이다. 그만큼 경호 대상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인 동시에,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충성심에 사로잡혀 경호 대상과 한 몸이 돼 버리면 주변 위협을 제대로 살피지 못해 경호 대상자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넉 달 전까지 대통령경호처장이었던 김용현 전 국방장관은 왜곡된 충성심이 대통령에게 얼마나 해로울 수 있는지 보여준다. 국민들에게 충격적인 장면으로 각인된 KAIST 졸업식 입틀막 사건은 그의 지휘하에 벌어진 일이었다. R&D 예산을 복원하라는 이공계생의 합당한 주장을 틀어막는 경호원의 손은 윤석열 정부가 보여온 불통의 상징이 됐다. 윤 대통령이 ‘여론에 귀 기울이라’는 정치인들을 반국가세력으로 여기게 된 것도 참모들의 과잉 심기 경호가 한몫했을 것이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 이후 경호처의 행태를 보면 ‘김용현의 경호처’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경호처는 헌법재판소가 보낸 탄핵심판 서류를 받지 않고, 수사기관의 압수수색도 막고 있다. 그동안 청와대 압수수색이 실제 이뤄진 전례가 없긴 하지만 현 상황은 관례가 적용되기 어려운 사상 초유의 상황이다.
윤 대통령의 혐의인 내란죄는 외환죄와 더불어 대통령이라도 형사소추가 가능한 유일한 범죄다. 그만큼 사안이 중대해 대통령이 더 이상 헌정 질서를 훼손하지 못하도록 신속히 수사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경호처의 사법 방해는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고 있다. 직무 정지된 대통령을 대신해 경호처를 지휘해야 하는 한덕수 권한대행은 이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 이런 지휘 공백 속에 지금의 경호처는 ‘VIP 범죄 경호처’로 전락해 버렸다.
국민들이 경호처에 세금을 쓰는 데 동의한 이유는 대통령이 자신의 안녕보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도록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대통령 경호는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전제에서만 유지되는 제도인 것이다. 반헌법적 계엄 선포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대통령이 탄핵과 수사를 지연시키려 하는데 경호처가 이를 맹목적으로 보호한다면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 된다.
맹목적 ‘尹방탄’ 경호원 자부심 짓밟는 일
경호처는 조만간 큰 시험대에 놓일 전망이다. 윤 대통령이 지금처럼 수사기관의 소환 요구에 계속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 집행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경내로 들어가야 하는 압수수색과 달리 법원 허가에 따른 대통령 신병 확보는 경호처가 이를 막을 어떠한 명분도, 법적 근거도 없다. 만일 경호원들이 대통령을 데려가려는 수사관들을 물리력으로 막는 데 동원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이들은 계엄이 선포되던 3일 밤 국회에 투입됐던 군인들과 똑같은 자괴감을 겪게 될 것이다. 경호처가 묵묵히 일해 온 경호원들의 직업적 자부심마저 짓밟아선 안 된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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