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으로 직무 정지를 당한 후 대통령의 입 역할을 하는 이가 ‘40년 지기’ 석동현 변호사다. 윤 대통령의 법률 대리인도 아니고 ‘윤 대통령의 변호인단 구성을 돕고 있는’ 석 변호사가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가 전하는 대통령의 입장은 기함할 지경이다. “내란이 아닌 소란” “체포의 ‘체’자도 꺼내지 않았다”더니 23일엔 “비상계엄 하나로 수사하고 탄핵한다”며 “굉장히 답답하다는 토로를 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수사보다 탄핵 심판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25일 공수처의 2차 출석요구에도 불응할 계획이다. 석 변호사는 “폐쇄된 공간에서 수사관과의 문답을 통해 대통령의 입장과 행위의 의미를 설명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은 권한이 일시 정지됐을 뿐 “엄연히 대통령 신분”이어서 “대통령이 오란다고 가고 그런 것은 아니지 않나”라는 주장이다. 법조계에선 곧 재판에 넘겨지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수사 기록을 보고 변론 전략을 세우려고 시간을 끌고 있다고 본다.
▷탄핵 심판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이 서류 수령을 거부하자 헌법재판소는 23일 송달 효력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27일 첫 변론 준비 기일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석 변호사는 “탄핵소추 된 지 10일도 안 됐다”며 불참을 시사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입장문을 통해 계엄 선포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한 바 있다. 송달된 서류는 거부하면서 장외에선 여론전을 펼치니 구차한 지연작전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계엄 하나로…” 발언은 그깟 ‘경고성 계엄’으로 무거운 사법적 심판을 받는 건 억울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하지만 계엄 당일 오찬에서 김 전 장관이 “탱크로 국회를 밀어버리겠다”고 했다는데 실제로 그날 밤 탱크부대장이 판교 정보사에 대기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임하는 현직 대법관에 대한 구두 체포 지시, 야당 대표에게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부장판사에 대한 위치 확보 시도도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설마 했던 ‘북풍 공작’ 의혹을 뒷받침하는 물증까지 나왔다. 윤 대통령이 야당을 두고 언급한 ‘광란의 칼춤’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무능해서 실패했기 망정이지 어쩔 뻔했나.
▷‘6시간 계엄’에 놀란 가슴이 가라앉기도 전에 이처럼 경악할 만한 속보들이 쏟아지고 있다. 5100만 국민이 두고두고 할부로 치러야 할 안보와 경제적 대가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조차 안 된다. 탄핵 심판이든 내란 우두머리 수사든 부르는 대로 나가도 모자랄 판에 “엄연한 대통령”이라며 탄핵과 수사 순서를 정하고 있다. 그러고도 “굉장히 답답하다”고 한다. 사태 파악을 못 할 정도로 아둔한 건가, 비겁하게 모르는 척하는 건가. ‘대통령 복 없는 죄’밖에 없는 국민 속은 뭐라 해야 하나.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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