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 논설위원 |
배신은 우리 사회에서 익숙한 단어지만, 직접 경험하는 일은 드물다. 누군가로부터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리는 행위를 당했을 때의 충격은 인생을 뒤흔든다. 믿음이 깊거나 친밀할수록 고통은 크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라는 인기 TV 드라마가 제목부터 불편함을 주는 건 친밀감과 배신감의 정비례성 때문일 것이다.
이 드라마의 갈등 구조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경찰 프로파일러인 아버지가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보이는 고교생 딸을 살인자로 의심하는 내용이다. 의심해서는 안 되는데 의심할 수밖에 없는 숨 막히는 스토리가 시청자를 괴롭힌다. 서로에게 ‘친밀한 배신’을 느끼는 부녀 관계는 남 일이어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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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검사 대통령의 계엄 폭거
수하 법률가 장관도 법치 유린
‘법치 소시오패스’ 공포스러워
드라마의 원작 소설은 없다고 한다. 흥행에 한몫한 제목은 내용이 전혀 다른 심리학책에서 차용한 것이다.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인 마사 스타우트 박사가 쓴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 장애) 연구서의 번역본 제목이다. 미치지 않고 멀쩡한, 심지어 매력적인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실제 사례를 모았다. 살인자까지는 아니더라도 평범한 일상에서 동료의 성공을 빼앗으려고 거짓말을 일삼거나 경력에 흠집을 내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는 악인들이 있다. 양심 따위는 ‘엿 바꿔 먹은’ 인간 말종인데, 저자는 그런 작자가 우리 주변에 25명 중 1명의 확률로 포진해 있다고 진단한다. 책의 원제 『The Sociopath Next Door(당신 옆의 소시오패스)』는 그런 위험한 현실에 대한 경고다.
같은 제목의 두 콘텐트가 지금의 한국 사회를 절묘하게 조명하고 있다. 국민은 전자의 드라마처럼 법치(法治)와 가장 친밀한 줄 알았던 대통령으로부터 계엄이라는 ‘헌법적 배신’을 당했고, 후자의 책에 등장하는 소시오패스처럼 화려한 법조 경력을 천연덕스럽게 배반하는 양심 불량을 목도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배신의 길을 작정한 듯하다. 헌법재판소 서류를 받는 ‘소극적 준법’마저 거부했다. 계엄 선포가 헌법에 기반한 대통령의 권한이라던 강변이 무색하다. ‘발송 송달’(서류가 도착하면 받은 것과 같은 효력이 생김)이라는 생소한 법률용어까지 국민이 알아야 하는가.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은 곧장 수령했다는 기억을 되살리니 더 어이없다.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동기인 검사장 출신 석동현 변호사는 “대통령이 자기의 상황이나 여러 가지 입장을 이해시키는 데도 지금 부족한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반문했다. 3주 전 계엄 쇼크로 크리스마스 시즌의 행복감을 날린 국민 앞에서 할 소리인가. 국민을 마더 테레사로 아는 것인가. 이쯤 되면 법치도, 정치도 아닌 후안무치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법치에 대한 친밀한 배신은 윤 대통령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계엄 선포 다음 날(4일) 대통령 안전가옥에 모인 부하 공직자들도 같은 행태를 보였다. 강골 검사로 김건희 특검법안과 채 상병 특검법안이 민주주의의 원리를 훼손한다고 맞섰던 법무부 장관, 합리적 기획통 검사로 날리며 법무·검찰의 입(대변인)으로 낯익은 민정수석, 자타공인 검찰 최고의 이론가로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의 이슈에서 전면에 섰던 법제처장. 공교롭게도 이들은 안가 모임 이후 동시에 휴대전화를 교체했다. 우두머리를 잃은 늑대의 무리처럼, 일반인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률의 빈틈을 살핀 것일까. 이완규 처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받기 싫었다”고 이유를 댔다.
우두머리와 부하들의 행태로 봤을 때, 윤 대통령을 포함한 엘리트 법률가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승리를 위한 법치의 신기술을 개발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시간만 있으면 국민의 배신감은 언제든 ‘성급함’이나 ‘오해’로 각색될 수 있다고 확신할 것이다. 가위 ‘법치 소시오패스’라 할 만하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이기에, 무속인까지 동원된 소름끼치는 계엄 작전 못지않게 공포스럽다.
김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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