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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노동일 칼럼] 우원식 국회의장의 역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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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안정 여야정협의체 등
고비마다 중재자 역할 담당
현 난국 헤쳐나갈 지혜 기대


파이낸셜뉴스

노동일 주필


지난 5월 17일 아침 일찍 지인이 전화를 걸어 왔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서울 노원구의 같은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며 "기도하는 분이니 잘하실 거예요"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우 의장이 당선자 총회에서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뽑힌 16일 저녁 방송을 보고 전화한 것이었다. '명심'이 '추심'이라는 관측을 깨고 5선의 우 의장이 6선의 추미애 당선자를 꺾은 것은 이변이었다. 우 의장의 승리비결은 상대적 안정감,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반발, 폭넓은 당내 인맥 등을 꼽을 수 있다. 22대 국회는 우 의장을 선출한 6월 5일 첫 본회의부터 '반쪽 국회'로 출발했다. 제헌국회 이후 여당이 불참하고 야당 단독으로 국회가 개원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불명예였다. 다음 날인 6월 6일 한 신문의 1면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의장단 선출 전 본회의장 맨 뒤에 앉아 기도하는 우 의장의 모습이었다.

우 의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여당은 중립적이 아니고 민주당 편에서 국회를 일방적으로 운영했다고 비판한다. 쟁점법안 강행 처리를 위한 본회의를 결국 열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때로는 야권에서 "매우 당황스럽고 경악스럽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9월 야당 주도로 법사위를 통과한 이른바 쌍특검법, 지역화폐법 등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 의장은 방송관련법, 특검법, 예산안 등에 대해 그 나름의 중재 노력을 기울였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첨예한 진영대립 때문이다.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 13일 발표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우 의장에 대한 신뢰도는 56%였다. 이재명 41%, 한덕수 21%, 한동훈 15%. 국회 '월담'으로 신속하게 계엄해제요구안을 통과시킨 우 의장의 활약(?)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정국은 여전히 불안하다. 야권은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 5명 이상의 국무위원 탄핵을 위협하고 있다. 비상계엄 관여 운운하지만 한 대행의 거부권 행사 때문이다. 국가신인도, 국정파탄 우려 등은 나 몰라라 한다. 그런 한편 공석인 헌법재판관 임명을 다그친다. 여당은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은 불가하다고 주장한다. 양쪽 다 예전과 180도 달라졌지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다.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가 안 된다면 헌법재판관 임명도 하지 말아야 한다. 거부권 행사가 당연하다면 재판관 임명도 해야 한다. 정치인들에게 과거와의 일관성을 기대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현재의 주장은 앞뒤가 맞아야 한다.

한 대행은 24일 특검법과 헌법재판관 임명 등 현안 처리를 위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면서 "우원식 국회의장을 중심으로 해법을 마련해주실 것"을 요청했다. 아쉬운 것은 우 의장의 즉각적인 반응이다. "특검은 국민의 요구"라며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 처리 문제를 여야가 다시 논의 대상으로 삼자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내용을 떠나 한 대행을 비난하는 것은 민주당으로 충분하다. 지금 우 의장은 단순히 민주당 출신 정치인이 아니다. 국가 의전서열 2위에 걸맞게 중립적이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 민주당의 탄핵 폭주에도 제동을 걸어야 마땅하다.

우리 사회 어디에도 귀를 기울일 만한 원로가 사라진 지 오래다. 우 의장 중재로 가동을 시작한 여야정 협의체에서 보듯 그나마 우 의장은 여야 사이에서 말이 통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우 의장의 기도는 자신의 더 큰 영달을 위한 것이거나, 민주당만을 위한 기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국회 운영을 위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지혜를 구하는 기도였을 것으로 믿는다. 그 지혜로 백척간두 위기의 대한민국을 위한 리더십을 발휘해 주길 바란다. 기독교인이라서가 아니다. 여론이 보여주듯 현재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분이니 잘하실 거예요"라고 한 지인의 말이 새삼스럽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바로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해답을 찾아야 할 때다.

dinoh786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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