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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fn광장] 지도자는 감정 아닌 감성을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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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지도자도 인간인데 이성만 따르겠는가. 이성 이외의 요소에 영향받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이성이 아닌 것은 감성(sensibility)과 감정(emotion)으로 나눠 생각해야 한다. 이성, 감성, 감정은 뒤섞여 있고 심리학자, 철학자마다 제각기 규정한다. 그래도 지도자는 무리해서라도 이들을 구분해 이성과 감성은 키우되 감정은 가능한 한 줄이려고 해야 한다. 특히 최고 정치지도자인 대통령이 감정에 너무 영향을 받는다면 나라가 심각한 상황에 빠진다.

계엄령 선포 전후 상황을 돌이켜 보면 윤석열 대통령이 냉철한 이성을 따르는지 의심스럽다. 계엄의 이유가 이성으로는 이해되지 않고, 계엄부터 탄핵소추까지 과정상 일련의 결정과 언행도 이성과 거리가 멀다. 감정에 과하게 지배받는 모습이다. 임기 초부터 극성스러운 여야 정치인들과 부딪치고 여론의 압박과 불신을 받는 가운데 측근 몇 명의 주술적인 말에만 귀 기울이다 과한 감정의 늪에 빠진 것 같다. 정치인의 자질을 쌓는 데 필요한 경험과 훈련도 없이 중책을 맡은 대통령으로서 사안마다 좌절감, 무력감을 느끼며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것 같다. 여기에 주술사들의 허황된 말이 들어오며 윤 대통령은 이성의 영역을 벗어나 망상, 아집, 충동의 감정 세계로 넘어간 게 아닌지.

감정은 이성뿐 아니라 감성과도 다르다. 감성은 남과의 상호작용에서 남의 마음에 공감하는 능력을 말한다. 감수성과 비슷한 개념이고, 마음의 순화를 동반한다. 지도자가 감성을 키울수록 구성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 그 체제가 민주적으로 원활하게 작동된다. 반면 감정이란 나 중심으로 일어나는 기질로서, 누구나 갖고 있으나 과하면 세상을 독단적으로 보게 된다. 감정에 지배받는 지도자는 나 위주로 생각하고 남은 무시하기 쉽다. 윤 대통령이 풍부한 감성을 지녔다면 남의 마음을 헤아렸을 것이므로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고 애꿎은 군인, 경찰, 공무원을 공범으로 희생시킬 일을 애초에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 중심적인 감정에 휘둘렸기에 압도적 다수의 국민은 무시하고 상식 밖의 행동을 한 것이다.

과한 감정의 통제 불능이 지도자의 큰 결격사유임을 예시하며 작금의 사태에 긴한 시사점을 주는 사례가 있다. 1989년 존 타워 미국 국방장관 지명자의 상원 인준 실패 사건이다. 타워는 텍사스 연방상원의원을 1961년부터 1985년까지 연임한 공화당 거물 정치인으로서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업적을 냈고 의원 퇴임 후엔 1987년 이란·콘트라 조사위원회 위원장까지 지냈다. 그런 그가 1959년 이래 30년 만에 처음으로 장관 인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해충돌, 여성편력 등의 문제도 있었으나 결정적 패인은 과한 음주와 그에 따른 감정통제 미흡 의혹이었다. 냉전 시기 국방장관으로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급사태에 항상 준비돼 있어야 하고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을 내려야 할 사람이 자주 과음하고 그 여파로 감정의 기복을 보인다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타워는 자신이 알코올중독자가 아니라고 항변했으나 중책을 맡기기에 불안하다는 당시 여론을 받들어 상원의원들은 냉정했다.

타워는 윤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과음과 감정통제의 어려움이라는 윤 대통령에 대한 항간의 소문은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남북한 긴장이 여전한 상황에서 불확실한 탈냉전기 한국의 글로벌 항로를 이끌어야 하는 한국 대통령이 냉전기 초강대국 국방장관보다 덜 중요한 자리일 리 없다. 더 많이 고민하며 난관을 헤쳐가야 하므로 항상 맑게 깨어 있어야 한다. 음주 여부와 상관없이(술 탓만이겠는가) 감정에 과도한 영향을 받아선 안 된다. 대통령뿐이 아니다. 모든 여야 정치지도자는 감정을 누르고 감성을 키워 공감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럴 때 이성에도 어긋나지 않는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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