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4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일대에서 열린 범국민촛불대행진 집회에 나온 시민들이 음악에 맞춰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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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 | 평범한 시민
지난 7일과 14일, 윤석열 탄핵 집회에 참여했다. 나는 국회 정문 앞에서 “윤석열을 탄핵하라”라고 외쳤다. 내 주변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주최 쪽 추산으로 7일에 100만명, 14일에 200만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나는 그날 공동체를 다시 배웠다. 같은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은 시키지 않아도 시린 거리를 열기로 채웠고, 집회에 못 온 사람들은 집회 참여자들을 위해 지갑을 열었다. 서로 다른 각자가 하나의 문제 앞에서 공동체가 됐다. 이 공동체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비상계엄 당일 밤 계엄군을 막은 시민이 없었다면, 촛불과 응원봉을 들고 국회 앞에 모인 시민이 없었다면, 집회 참여자들을 위해 선결제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탄핵 가결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탄핵 가결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서로에게 빚을 졌기에 거둔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 빚 덕분에 우리의 세계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한편, 탄핵 가결 이후의 사회는 이전과 달라야 한다. 그리고 달라진 사회는 우리가 탄핵 시국에만 서로에게 빚진 게 아니라, 일상에서 항상 빚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서로의 기댈 곳이 되어주는 사회여야 한다.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영국중앙은행 부총재를 지낸 미노슈 샤피크는 ‘이기적 인류의 공존 플랜’을 썼다. 원제는 ‘What We Owe Each Other’, 직역하면 ‘우리가 서로에게 빚진 것’이다. 그는 현대 사회가 개인에게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을 부과함으로써 작동한다고 진단한다. 그 위험 부담은 곧 공통의 빚이며, 그는 이 빚을 공동체가 분담하도록 사회계약을 개선하자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사회계약은 실업자와 재직자를 위한 평생 교육 도입, 정년 연장, 육아휴직 개선, 프리랜서 및 플랫폼 노동자 사회보험 가입, 기업 독점 철폐, 기본 노동 등이다. 그리고 이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치다.
미노슈 샤피크는 사회계약 개선을 정치 체계의 책임성 개선으로 정의한다. 새로운 사회계약은 새로운 사회의 방향이고, 그 방향으로 이끄는 건 정책이며, 그 정책을 만드는 건 정치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책임 없고, 다양한 의견을 대변하지 못하면 사회계약을 개선할 수 없다.
새로운 사회를 위해선 다양한 의견을 정치가 수용해야 한다. 지금이 기회다. 탄핵으로 정치인들이 그 어느 때보다 국민 눈치를 보고 있다. 조기 대선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2026년에는 지방선거가 있다. 우리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한 목소리로 말하고, 그것을 정치인들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물론 각자의 가치는 모두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환경을, 노동을, 돌봄을, 평등을, 인권을, 이주민을, 소수자를, 복지를, 장애를, 경제를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에 모두가 동의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탄핵 가결이 서로에게 진 빚으로 이룬 성과임을 기억한다면, 동의하지 않음이 비난이 되지 않고, 가능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빚진 사람의 말은 쉽게 비난할 수 없다.
이번 탄핵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사람들은 모두에게 박수를 받았다. 박수가 꼭 동의는 아니다. 아마 발언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함께 직면한 문제에 용기를 내고 발언한 것에 대한 격려도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위기의 순간마다 사람들은 사회에 더 목소리를 내고 격려해 준다. 동의 여부에 상관없이 말이다. 나는 여기서 희망을 품는다. 생각은 다르지만 그럼에도 박수 친 모습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다른 목소리를 인정함으로써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나는 국민 각자가 직면한 위기를 말하기를 희망한다. 그 위기를 공동체가 함께 듣기를 희망한다. 그 위기를 공동체가 함께 해결하는 사회를 희망한다. 정치가 더 큰 책임성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를 희망한다. 희망은 힘이 세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빚을 졌다.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기회는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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