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보수 성향 단체인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자유 대한민국 수호 국민혁명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탄핵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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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구 | 공인회계사
저는 한글 단어가 표현하는 풍성함에 대해 감탄하곤 합니다. 그런데 모르는 영어 단어를 만나면 사전을 뒤척이지만, 모르는 한글 단어는 사전을 찾아보는 대신 그냥 느낌으로 감으로 그 뜻을 유추해왔던 것 같습니다.
요 몇주 사이에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를 시작으로 국회의 계엄해제, 대통령 탄핵 결의, 내란 특검법 발의 등 많은 일들이 일어나다 보니 이를 설명하기 위한 말들도 방송과 신문에 난무했습니다. 이 가운데 한 단어가 제 관심을 끌었습니다. ‘오죽하면’.
이른바 아스팔트 극우 보수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일부 국회의원도 “야당의 횡포가 오죽하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겠냐”라고 합니다. ‘오죽하면’이란 단어가 제 귀에 거슬렸습니다. 그래서 느낌으로 감으로 이해하는 대신 사전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오죽하면’의 사전적 의미는 ‘정도가 심하거나 대단하다’입니다.
이십여차례의 정부 관료 탄핵 발의, 거부권 행사를 유발하는 무분별한 입법 발의, 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방탄하기 위한 국회 권력의 남용 등 그들이 보기에는 야당의 횡포(?)가 오죽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은 자유이니까요. 나와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그 의견을 말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같이 싸워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니까요.
하지만 사전적 의미를 떠나 ‘오죽하면’이라는 단어가 평소 저에게 주는 느낌은 달랐습니다. 가난과 고독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독거 노인을 향해, 기본적인 인간적 요건을 침해받아 그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향해, 주류와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국민으로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혜택을 제한받아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는 성소수자들을 향해, 장애인 이동권리를 주장하며 출근길 지하철에서 농성하는 장애인을 향해, 1㎡(0.3평)의 철창에서 31일 동안 스스로 갇혀 노동조건 개선 및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하청 노동자들을 향해 “오죽하면 저랬을까”라는 표현이 저에게는 더 자연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오죽하면’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의 단어입니다. 무장 병력을 동원해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의 권능을 마비시키려고 했던,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정치인과 법조인을 특수부대원을 동원하여 체포하려고 했던, 북한을 자극해 국지전을 유발하려고 했던, 그리고 본인과 배우자에 대한 비리 혐의를 검찰을 이용하여 막으려 했던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에게 사용할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말은 생각을 지배하고 생각은 우리를 지배한다고 합니다. 사회적 강자가 ‘오죽하면’의 대상이 된다면 우리의 공동체는 무너지고 이웃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대통령 같은 최고의 권력자가 ‘오죽하면’의 대상이 된다면 우리는 1980년 광주의 참혹한 현실을 다시 마주쳐야 할지도 모릅니다.
‘오죽하면’을 대통령에게 사용하는 분들은 다시 한번 그 용법에 대해 생각해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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