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대선 예비후보 시절이던 2021년 9월8일 모교인 서울 충암고에서 야구부 선수들과 만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윤석열 캠프 제공 |
김동훈 | 전국부장
내가 충암고를 처음 알게 된 건 1977년이다. 회색 유니폼과 빨간색 마크가 초등학생 눈에 들어왔다. 신일고와의 황금사자기 고교야구 8강전. 충암고 선발투수 기세봉은 8회까지 노히트노런을 기록중이었다. 충암고의 2-0 리드. 그러나 운명의 9회. 신일고는 김남수의 3점 홈런으로 기적 같은 3-2 역전승을 거뒀다. 당시 충암고 감독이 서른다섯살의 ‘젊은 야신’ 김성근이다. 그는 “그날 야구인생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4강에 들어야 대학 입학 자격이 주어지던 시절이다. 그러니 죽기 살기로 맞선 8강전이었다. 대구가 고향인 충암고 포수 조범현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우리 이제 대학 우예 가노” 하며 통곡했다. 충암고는 개교 8년의 신생 학교였다. 지방에서 야구 명문고 진학에 실패한 선수들을 끌어모았다. 조범현도 그런 경우였다.
그로부터 한달 뒤 열린 봉황대기 고교야구. 운명처럼 신일고를 8강에서 다시 만났다. 충암고는 ‘복수’에 성공했고, 내친김에 팀 창단 첫 우승까지 차지했다. 땅을 치며 통곡했던 조범현은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충암고 전교생이 응원을 갔으니, 2학년 윤석열과 3학년 김용현도 그 현장에 있었으리라.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과 ‘행동대장’ 김용현. 까까머리 고교생이던 둘은 47년 뒤 검찰과 군부를 손에 쥐고 충암고 후배들과 함께 그들만의 세상을 꿈꿨다. 충암파는 딱 6명. 계엄을 실행할 수 있는 대통령(윤석열·8회), 그 대통령에게 계엄을 건의할 수 있는 두 사람, 국방부 장관(김용현·7회)과 행정안전부 장관(이상민·12회). 여기에 국내 첩보(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17회)와 대북 첩보(박종선 777사령관·19회)를 손에 넣었고, 대통령실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까지 충암파(황세영 101경비단장·18회)에게 맡겼다. 12·3 내란으로 충암고 동문들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윤석열을 향해 “충암고에서 호적을 파라”는 말까지 나온다. 야구부 관계자는 “연중 가장 큰 행사인 연말 송년회를 취소했다”며 아쉬워했다.
특정 정부에 특정 학교 출신이 유난히 많은 적이 없었던 건 아니다. 김영삼 문민정부 시절엔 이른바 ‘케이투’(K2)로 불린 경복고(K1은 경기고) 출신이,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엔 용산고 출신이 그랬다. 하지만 이건 우연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경복고 출신도, 노 전 대통령이 용산고 출신도 아니다. 윤석열은 노골적이었다. 이미 검찰을 손에 넣은 그는 충암고 출신 군인과 경찰을 살뜰히 챙겼다.
이 중에서도 윤석열에게 김용현은 박정희의 차지철, 전두환의 장세동과 같았다. 김용현은 1년 후배 윤석열을 신처럼 받들었다. 승승장구하다가 대장 진급에 실패하고 야인이던 자신을 알아봐준 윤석열에게 충성을 다했다. 국군의 날 행사 때 윤석열이 무언가 중얼거리자 이등병처럼 긴장한 김용현이 귀를 바짝 갖다댄다. ‘군신 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닐 장면이다. 김용현은 윤석열의 호위무사다.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윤석열의 뒤통수에 대고 “국정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국민이 불행해진다”고 외치는 순간, 번개처럼 손을 뻗어 강 의원의 얼굴에 손찌검을 했다. 그는 구속 수감 중에도 “대통령님의 여망을 제대로 받들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김용현은 비상계엄 선포 10시간 전이던 지난 3일 오찬 자리에서 “국회가 국방 예산으로 장난질한다. 탱크로 확 밀어버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45년 전, 1979년 10월 부마항쟁 때 “캄보디아에서는 300만명이 죽어도 까딱없는데, 우리도 데모하는 놈들 100만~200만명 탱크로 밀어버린다고 까딱 있겠냐”는 차지철의 섬뜩한 발언이 떠오른다.
이미 군과 경찰 수뇌부 10명이 구속됐지만 광기 어린 12·3 내란의 극악무도함은 파도 파도 끝이 없다. 감금, 납치, 사살이란 살벌한 단어가 등장하고 군부와 비선, 무속이 뒤엉켜 있다. 이제 수사는 내란을 넘어 외환으로 확대되고 있다. 내란의 증거가 켜켜이 150개나 쌓였는데도 윤석열은 ‘배 째라’다. 당당하게 수사받겠다던 말은 걷어차고 구차하게 시간을 끌고 지질하게 버티고 있다.
‘회색 유니폼’ 충암고는 4대 메이저 대회만 10회 우승한 야구 명문이다. 이창호, 유창혁, 최철한, 박영훈(이상 9단) 등을 배출한 바둑 명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광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초등학생 눈에 박혔던 충암고 회색 유니폼을 이제 그만 더럽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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