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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논현로] ‘주52시간’에 옴짝달싹 못하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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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성장기 한국은 불철주야 일해
이젠 법정시간 얽매여 경쟁력 상실
땀없인 혁신·성장 불가능 깨달아야


이투데이

시간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세계 최고 갑부 중 한 사람인 빌 게이츠는 하루 평균 13시간을 일했다고 한다. 아침 일찍 출근한 직원이 발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있어 살펴보았더니 밤새 일하다 쓰러져 잠든 빌 게이츠였다는 일화도 있다.

필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조찬간담회는 대개 아침 7시 30분에 한다. 일찍 업무를 시작하는 셈이다. 하루는 전경련회관 현관에서 정주영 회장을 영접한 적이 있다. 7시 30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정 회장은 문을 열어주는 필자를 향해 “조금 늦었지? 아침 회의가 늦게 끝났어” 하며 계면쩍어했다. 나는 7시 30분이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간에 정 회장은 회사에서 한차례 회의를 더 하고 나왔던 것이다. 현대에 알아봤더니 중동사업 관련 사장단 회의를 매일 아침 5시 30분에 주재한다고 했다. 당대에 한국 최대의 부(富)를 일군 원동력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세계는 일하고 있다. 또 일하는 회사는 커지고 있다. 테슬라의 창업주 일론 머스크는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무섭게 일하며 한계를 돌파했다. 2017년 전기차 모델 3의 출시를 앞두고 그는 네바다 공장에서 네댓 시간만 잠자며 임직원들을 무자비하게 굴렸다. 직원들은 밤 10시까지 일하고 공장 바닥에서 눈을 붙인 채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다.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는 이런 방식으로 달성될 수 있었다. 트럼프 2기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지명된 머스크는 ‘주 80시간 근무’를 조건으로 내걸고 직원들을 충원했다. 그리고 그들을 작은 정부 혁명가라고 추켜세웠다. 그의 일하는 방식으로 보아 미국 정부의 효율성이 크게 높아질 것 같아 부럽기만 하다.

파운드리(반도체수탁생산)의 세계 최강자 대만 TSMC는 불이 꺼지지 않는 회사로 유명하다. 2014년 삼성의 추격을 받자 창업자 모리스 창은 ‘나이트호크 프로젝트’를 꺼내들었다. 반도체 연구개발(R&D)을 24시간 3교대로 하는 방식이었다. 반도체 생산은 24시간 연중무휴로 돌아가지만 R&D의 24시간화는 세계 반도체산업에서 처음 시도하는 일이었다. 채찍만 든 것이 아니었다. 밤 11시에 출근해 다음 날 오전 10시에 퇴근하는 야근조엔 연봉이 30% 추가 지급됐고 연말 상여금도 50% 더 얹어 줬다.

지난해 6월 미국 애리조나에서 TSMC가 공장을 지을 때 일부 직원은 한 달 동안 계속 사무실에서 잤다며 경쟁사인 인텔처럼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요구했다. 그러자 TSMC의 마크 리우 회장은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은 반도체산업에 뛰어들면 안 된다고 제동을 걸었다. 지금 TSMC는 욱일승천하고 있고 인텔은 쇠락을 거듭하고 있다.

2008년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국내총생산(GDP)은 14조 달러로 비슷했다. 그러나 2023년까지의 15년간 EU의 GDP가 15조 달러가 되는 동안 미국은 무려 82% 증가해 27조 달러가 됐다. 유럽의 쇠퇴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근로시간 단축이 주요한 이유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2022년 미국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82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1719시간)을 웃돌지만 프랑스는 1427시간, 독일은 1295시간으로 OECD 꼴찌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회의원들은 왜 주52시간제를 고수하려고 할까? 신문기사에서 어느 반도체산업 기업인과 야당 국회의원의 대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의원실 보좌관들은 몇 시간 일하느냐고 물었더니 바쁠 때는 주70~80시간도 일한다고 했다. 주52시간은 지키지 않느냐고 하자 그거 지키면서 어떻게 나라가 돌아가기를 바라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반도체도 나라를 돌게 하니 더 일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자 “그것 참, 삼성, 하이닉스가 대한민국입니까?” 하더라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국회의원만 나라를 위해 일하고 기업은 나라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1980년대 중반 한국이 무섭게 성장할 때였다. 당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일본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었다는 신문기사까지 있었다. 런던상의(LCCI) 근무 중 홍콩 기업인을 만났는데 그는 한국 사람은 얼마나 일하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주8일, 하루 25시간(8 days a week, 25 hours a day) 일한다고 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며 눈이 둥그레져 되묻는 그에게 나는 “열심히 일하면 시간도 만든다”라고 했다. 그때는 그런 믿음으로 온 나라가 일하고 또 일하던 때였다.

주 52시간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한다면 꼭 해야 하는 업종을 적시하는 시스템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땀을 흘려야만 혁신도, 성장도, 성공도 가능하다. 정직한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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