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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노인이 된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노약자석에 앉지 않고 간혹 자리를 양보해 주는 승객이 있으면 괜찮다고 거절합니다.”
경기 김포시에 사는 박모 씨(64)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내년에 65세가 되면서 법적으로 노인이 된다는 걸 실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한 두 살 많은 주변 사람들을 봐도 노약자석에 앉는 사람이 없다”며 “저 역시 오전에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후에 운동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면서 회사다닐 때처럼 바쁘게 지내는 중”이라고 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한국은 이달 23일 기준으로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전체 주민등록 인구의 20.0%가 되며 유엔이 규정한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이에 전문가 사이에선 65세인 법적 노인의 기준을 바꿀 때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젊고 건강한 노인’ 증가
현재 법적 노인 연령 기준인 65세는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에서 처음 등장했다. 유엔이 고령사회를 정의할 때 쓰는 연령도 65세다. 기초연금과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각종 복지 제도가 이 기준을 따르면서 노인의 기준이 65세로 굳어졌다.
하지만 경제 성장으로 과거보다 영양 상태가 좋아지고, 의료 기술이 발달하면서 수명은 계속 증가했다. 65세를 노인으로 처음 규정한 1981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66.7세였다. 노인이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2024년에는 84.3세로 17.6세나 늘었다.
특히 건강에 신경을 쓰는 사회 분위기가 정착되면서 질병이나 부상 등으로 고통받는 기간을 뺀 건강 연령도 크게 높아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2000년 66.6세에서 2010년 70.1세, 2020년 72.5세로 늘었다.
이처럼 70세 초반까지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이들이 늘면서 사회 변화에 맞게 노인 연령을 상향해야 된다는 주장이 2010년 전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2016년 박근혜 정부는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에서 노인 기준 연령 상향 방안을 포함시켰다. 2019년 문재인 정부 때는 박능후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노인 기준 연령을 70세로 단계적으로 올리자고 제안했으며, 올해 10월에는 이중근 대한노인회장이 노인 기준 연령을 연간 1년씩 올려 75세까지 올리자고 정부에 공식 제안했다.
●“노인 연령 올리면 정년도 연장해야”
노인 기준 연령이 높아질 경우 사회 각 분야에서 상당한 변화가 동반될 수밖에 없다.
먼저 지하철 무임승차나 공공시설 할인·무료입장 등 노인복지법에 근거한 혜택은 노인 기준 연령 상향과 함께 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무료 건강검진이나 예방접종, 노인 일자리 사업 기준도 변경될 가능성이 크다.
각종 연금제도 역시 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65세 이상이면서 소득 하위 70% 이하인 경우 매달 최대 33만4810원의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다. 또 현재 63세인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은 2033년 65세로 연장될 예정인데 현재 59세인 가입연령 상향과 함께 논의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 사이에선 노인 기준 연령 상향을 추진할 경우 정년 연장이 동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현재 법적 노인으로 진입 중인 베이비부머 1세대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월등히 건강한 편”이라며 “이들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정년을 늘리는 동시에 노인 연령을 70세로 상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노인을 전기 노인(65~75세)과 후기 노인(75세 이상)으로 구분하고 연금 등 복지 수급 연령을 단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 통해 노인 관련 복지 예산 지출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70대 초반까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70대 중반 이후는 복지 정책으로 보호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청년층 부담이 감당못할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높은 노인빈곤율 고려해야”
다만 일부에선 한국의 높은 노인 빈곤율을 고려해 노인 연령 상향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40.4%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상황에서 기준 연령을 높여 각종 복지 혜택을 줄일 경우 빈곤 고령자의 열악한 상황이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기준 연령을 올리더라도 복지 전반에 일괄 적용하는 대신 제도별 특성을 고려해 연동 여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 올리더라도 독일 등 선진국 사례를 벤치마킹해 1살씩 단계적으로 올려야 한다”고 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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