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풀리지 않은 의문은 대체 왜 그 무모한 일을 벌였느냐다. 윤석열 대통령은 ‘거대 야당의 의회 독재’를 이유로 들었다. ‘김건희 여사 수호 계엄설’ ‘명태균 황금폰 유출 제지용’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계엄의 동기를 이해하려면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 계엄을 모의한 것인가.
▷가장 눈여겨볼 시점이 계엄을 총지휘한 김용현 국방부 장관 인사다. 대통령은 8월 12일 김 당시 대통령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에 지명하기 위해 임명된 지 1년도 되지 않은 외교안보 라인을 돌연 교체했다. 미 대선을 85일 앞둔 시점의 깜짝 인사에 ‘말 못 할 사연이라도 있는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당시 대통령실은 ‘여름휴가 중 숙고를 마친 결과’라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대통령이 휴가 때 함께 골프 친 부사관들이 이번 계엄 과정에서 국회에 투입된 707특임단 소속이라는 야당 측 주장이 나왔다. 또 당시 부하 여단장과의 하극상 사태로 경질설이 돌던 문상호 정보사령관이 김 전 장관의 인사로 살아남아 함께 계엄을 준비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계엄 의혹을 제기한 때도 이즈음이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8월 17일 “국방부 장관의 갑작스러운 교체와 대통령의 뜬금없는 반국가 세력 발언으로 이어지는 최근 정권 흐름의 핵심은 북풍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 작전”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뉴라이트 역사관’ 논란으로 광복회와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검은 선동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후 국무회의에선 “반국가 세력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며 비판 세력에 대한 노골적 적대감을 드러냈다.
▷국방부 장관 교체가 계엄 준비 작전이라면 계엄 구상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올 3월 윤 대통령과 저녁 자리에서 ‘조만간 계엄을 하겠다’는 말을 들은 신원식 당시 국방부 장관(현 국가안보실장)이 경호처장이던 김 전 장관 등을 불러 이를 막기 위한 대책 회의를 했다고 한다. 여인형 방첩사령관은 “지난해 말 대통령이 비상조치가 필요하다고 얘기했다”고 진술했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전북 군산의 무속인을 찾아 지난해 초부터 ‘앞으로 일을 벌일 것’이라고 하고, 군인 10여 명의 이름을 건네며 “나를 배신할 놈이 있는지” 물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야당의 계엄 의혹 제기에 대통령실은 “나치 스탈린 전체주의의 선동정치”라며 펄쩍 뛰었다. 또 “민주당 의원들의 머릿속엔 계엄이 있을지 몰라도, 저희의 머릿속에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허황된 음모론이라 무시하고 넘어갔던 계엄이 대통령 머릿속엔 오래전부터 자리하고 있었던 듯하다. 자기만의 성채에 갇혀 널리 듣지도, 질문받지도 않는 지도자란 얼마나 위험한가. 비상식적인 국정 운영과 황당한 발언을 더 의심하고 따져 물었어야 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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